‘오징어 게임’ 폭력 그대로 배우는 전 세계 아이들

입력 2021-10-10 15:26 수정 2021-10-10 15:29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스틸. 넷플릭스 제공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화제를 모으자 아이들이 드라마의 폭력성에 노출되고 이를 따라 하고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벨기에의 한 공립학교 ‘에르켈린스 베구아지네 하이노’에서는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에서 등장하는 폭력적인 장면을 따라 하고 있다고 알렸다. 학교 측은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벨기에 버전 ‘하나 둘 셋 태양(1-2-3 soleil)’ 게임을 하다가 탈락한 친구들을 때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극 중 게임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이 총에 맞고 죽는 잔인한 모습을 따라 한 것이다. 학교는 이 게임이 “불건전하고 위험하다”고 말하면서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협조를 구했다.

벨기에의 한 공립학교 ‘에르켈린스 베구아지네 하이노’가 소셜미디어에 학부모들에게 올린 공지. 페이스북 캡처

9일(현지시간) 더 타임스 등 다수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런던 북동부의 존 브램스턴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을 보고 운동장에서 서로 총을 쏘는 척하고 노는 모습이 발견돼 우려된다는 내용의 편지를 학부모들에게 보냈다. 학교 측은 ‘오징어 게임’ 속의 행동을 따라 하는 아이가 있으면 부모를 부르고 징계를 하겠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또 켄트 지역의 샌다운 초등학교는 온라인 안전과 연령대에 적절치 않은 콘텐츠를 보는 게 위험하다는 보강 수업을 하는 등 ‘오징어 게임’이 아이들에게까지 퍼지자 학교마다 대응책을 만드는 분위기다.

넷플릭스가 아이들에게 ‘오징어 게임’이 노출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 부모 텔레비전·미디어 위원회(PTC) 멜리사 헨슨 프로그램 국장은 지난 6일 웹사이트에 게재한 논평에 ‘오징어 게임’에 관해 “믿기 어려울 만큼 폭력적”이라고 지적하면서 “넷플릭스가 미성년자에게 유해한 콘텐츠가 그들의 플랫폼에서 배포되지 않도록 게이트키퍼(문지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PTC는 또한 “TV-MA(성인 관람가) 등급을 받았음에도 넷플릭스의 마케팅 공세에 넷플릭스 앱을 열자마자 메뉴 스크린 대부분에 ‘오징어 게임’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부모가 시청 제한 기능을 켜놓지 않으면 미성년자도 쉽게 ‘오징어 게임’을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오징어 게임' 영국 현실판 광고. 페이스북 캡처

‘오징어 게임’ 극에 등장하는 쉽고 간단한 게임이 현실에선 계속 복제되면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PTC는 “다른 소셜미디어 사이트들에서 등장인물들이 참여하는 게임이 수십 차례 복제되고 있으며 10대 청소년들이 로블록스나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 플랫폼을 통해서도 이 시리즈를 보고 있다”고 알렸다. ‘오징어 게임’ 현실판 광고가 SNS에 오르기도 했다. 영국 웨스트 런던에서 열리는 이 게임의 참가비 100파운드(약 16만원)에 상금 1만 파운드(약 1630만원)이 걸려 있다. 게임에서 지면 실제 총 대신 BB탄 총을 얼굴에 맞는다는 설정이다.

앰네스티 인도네시아의 '오징어게임 속 인권침해' 게시물. 인스타그램 캡처

반면 ‘오징어 게임’에서 등장하는 인권 침해를 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모습도 나온다. 10일 CNN인도네시아 등에 따르면 앰네스티 인도네시아 지부는 전날 SNS에 ‘오징어게임 속 인권침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려 인기를 끌고 있다.

앰네스티 인도네시아는 첫 번째로 ‘생명권’을 강조하며 “게임에 진 참가자를 죽이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기본권인 생명권 침해”라고 밝혔다. 또한, 자동차회사 ‘드래곤모터스’에서 해고된 주인공 성기훈의 사례로 ‘근로권’ 침해를 설명했다. 드라마 속 파키스탄 이주 노동자 알리 압둘이 노동 착취를 당하는 모습에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탈북자 새벽과 가족의 이야기에는 ‘이동의 자유’가 침해당했다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