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에서 퇴직금 50억원을 받은 곽상도 의원 아들과 자회사 천화동인 1호의 이한성 대표 등 주요 관계자들을 잇따라 소환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로부터 100억원을 건네받은 것으로 드러난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인척 사업가 이모(50)씨도 이날 경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경기남부경찰청 전담수사팀은 이날 오후 2시부터 7시간여에 걸쳐 곽 의원의 아들 병채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병채씨는 2015년 6월 화천대유에 입사해 올해 3월까지 근무하다 퇴사하면서 퇴직금과 성과급, 위로금 등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았다. 세금을 떼고 실수령한 돈은 28억원이다.
앞서 시민단체 적폐청산국민참여연대는 “병채씨가 받은 퇴직금은 대기업에서 20∼30년간 재직한 전문경영인의 퇴직금보다도 훨씬 많은 수준으로 곽 의원을 향한 대가성 뇌물로 추정된다”며 곽 의원 부자와 화천대유 이성문 전 대표, 회계담당자를 뇌물과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지난달 고발했다.
화천대유와 병채씨는 “업무 중 산재를 당해 회사가 상응하는 위로금을 챙겨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여권과 시민단체에선 이 돈이 대가성 있는 뇌물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정무위의 금융위 국감에서 곽 의원을 포함한 이른바 ‘화천대유 50억 클럽’ 6명의 실명이 언급되면서 파장이 일기도 했다.
병채씨는 조사를 마친 뒤 퇴직금의 적절성과 사용처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고만 밝혔다.
천화동인 1호 이한성 대표에 대한 조사도 이날 오후 1시쯤 시작돼 10시간여에 걸쳐 이어졌다. 경찰 출석에 앞서 이 대표는 배당금이 정치 후원금으로 쓰였다는 의혹이 있다는 취재진의 말에 “그건 말이 안 된다”고 답했다.
천화동인 1호가 2019년 10월 62억원에 사들인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서판교)의 타운하우스 1채에 대해서는 “그건 제가 직접 계약했다”고 말했다. 타운하우스 용도가 화천대유 최대 주주 김만배씨가 밝힌 것과 같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 대표는 조사를 마친 뒤 특혜 의혹과 배당금 사용처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냥 있는 그대로 성심껏 소명했다”고 답했다. 대장동 사업에서 특혜를 받은 적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일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대표는 현재 피의자 신분이며 지난달 30일 김씨, 화천대유 이성문 전 대표 등과 함께 출국금지 조처됐다.
앞서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지난 4월 김씨와 이 전 대표 등의 2019∼2020년 금융거래에 수상한 자금 흐름이 발견됐다며 경찰에 통보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화천대유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2019년 화천대유에서 26억8000만원을 빌렸다가 갚았고, 지난해에는 다른 경영진과 함께 12억원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지난해까지 장기대여금 명목으로 473억원을 빌린 것으로 공시됐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이들이 법인에 손해를 끼쳤거나 법인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정황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된 이씨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씨로부터 화천대유가 장기대여금 명목으로 빌린 473억원 중 100억원을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박 전 특검과 인척 관계로, 현재 대장동 분양대행업체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2018년까지 코스닥 상장사 A사의 대표이사로도 재직했는데, 박 전 특검은 2014년 1월부터 A사의 사외이사로 약 1개월간 재직하다가 ‘일신상의 사유’로 퇴직하기도 했다.
박 전 특검의 아들도 이씨의 또 다른 회사에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약 3개월간 근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김씨가 이씨에게 건넨 100억원 중 일부가 최종적으로 박 전 특검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이날 취재진에게 “김씨가 사업과 관련해 이씨의 요청으로 100억원을 빌려준 것은 맞으나, 박 전 특검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전 특검도 “이씨는 촌수를 계산하기 어려운 먼 친척”이라며 “그들 사이의 거래에 대해 관여한 사실이 없고 이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밝힌 바 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