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데뷔했던 최재형의 씁쓸한 퇴장…왜 실패했나

입력 2021-10-09 06:30 수정 2021-10-09 06:30
최재형 감사원장이 원장직 사퇴를 밝힌 지난 6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한 뒤 돌아서는 모습. 뉴시스

“일장춘몽을 꿈꿨던 그대. 다시는 정치권에 기웃거리지 말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2차 예비경선에서 탈락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향해 쏟아낸 조롱의 일부다.

이런 수모까지 당하는 신세로 전락한 최 전 원장은 불과 3달 전만 해도 ‘대장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위협하는 야권 2위 후보 ‘우량주’로 주목받았다. 당시 위상을 고려하면 이날의 초라한 퇴장은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당 지도부 총출동…화려한 데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지난 7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입당환영식을 마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논란을 계기로 여당과 대립각을 세우며 주목받았던 최 전 원장은 지난 6월 28일 감사원장직에서 전격 사퇴하면서 정계에 뛰어들었다.

초반 기세는 좋았다. 최 전 원장은 감사원장직을 던진 지 17일 만인 7월 15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입당식은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화려하게 등장한 최 전 원장의 지지율은 경쟁 후보인 윤 전 총장이 ‘X파일’ 의혹과 ‘국민의힘 입당’ 논란으로 지지율이 내림세를 타는 상황과 겹치면서 급등했다.

입당 직후 8.1%를 기록한 최 전 원장 지지율. KSOI 캡처

최 전 원장은 7월 23~24일 TBS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에서 8.1%를 기록하며 곧 10%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출마 선언 이후 지지부진…‘실언’ ‘우클릭’ 논란도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지난 8월 4일 경기도 파주 한 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최 전 원장은 출마 선언식 이후 각종 구설에 휘말렸다.

8월 4일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부터 “국정 전반과 정책에 대해 준비가 안 된 점을 인정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하며 ‘준비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안겼다. 이는 당내 경쟁 후보들로부터 공격받는 빌미가 됐다.

최 전 원장은 지난 1일 국민의힘 당내 경선 주자 5차 방송토론에서 “출마 선언하면서 언론의 질문에 ‘준비되지 않았다’라고 한 말을 주워 담고 싶다”며 해당 발언을 후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출마 선언식 직후 제기된 가족 모임에서의 ‘애국가 제창 논란’도 “과도한 국가주의”, “전체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가족이 지난 2019년 명절 모임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최 전 원장은 맨 뒤에 서있다. 최재형 캠프 제공. 뉴시스

거듭된 논란에 지지율도 한 자릿수에서 정체됐다. 최 전 원장은 지난달 14일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의 길을 가려고 한다. 캠프를 해체하고 홀로 서겠다”며 ‘캠프 해체’를 선언했다.

이후 최 전 원장은 ‘상속세 폐지’ ‘낙태 반대’ 등 강경보수 성향의 메시지를 거리낌 없이 내며 우클릭했다. 심지어 4·15 총선 부정선거 의혹을 꺼내 들기도 했다. ‘가덕도 신공항 재검토’를 선언하며 부산·경남(PK) 민심도 부정적으로 변했다.

이는 선거 초기부터 그를 돕던 정의화 전 국회의장, 김미애 의원, 김영우 전 의원 등 당내 지지 세력들이 이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커뮤니티, 트위터 등 온라인상 최재형 검색량 추이. 썸트렌드 캡처

최근 정치권에서 온라인상 여론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로 거론되는 SNS 검색어 추세 동향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출마 선언이 있었던 8월 1주 차 5만여 건에 달했던 최 전 원장에 대한 검색량은 가장 최근인 10월 1주 차 2300여 건까지 줄어들었다. 지지율이 제자리걸음 하는 동안 각종 SNS에서도 최 전 원장에 관한 관심이 빠르게 식어간 것이다.

“정권교체 위해 함께 하겠다”는 崔…향후 쓰임 있을까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8일 예비경선 2차 컷오프 결과 발표 후 캠프 관계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최재형 블로그 캡처

최 전 원장은 이날 컷오프 결과가 발표된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동지 여러분, 성원에 감사드린다”며 “평당원으로 돌아가 정권교체를 위해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내년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과연 정치권에서 계속 활동할 공간이 생길지는 불투명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선 결과에 대해 “근본적으로 최 전 원장이 우경화된 이미지를 보여준 부분이 부정적인 영향을 줬을 것”이라면서도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부분을 제대로 보여주면 정치권에서 추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도층을 공략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캠프 해체나 정 전 의장 등의 지지 철회 등이 악수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여준 것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원장이 정치 중립을 깨고 나왔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며 향후 최 전 원장의 정치적 입지가 좁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