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부산에 간 까닭은…아시아 영화계 별들의 ‘100분 대담’

입력 2021-10-07 19:39 수정 2021-10-07 20:13
봉준호 감독(왼쪽)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스페셜 대담’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불안의 감독’이예요. 제게 영화 작업은 불안 그 자체예요. 그런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확신의 감독’이예요.”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긴 창피하지만 저도 늘 불안해 죽겠습니다. 하하”

아시아 영화를 이끄는 한국과 일본의 두 감독이 부산에서 만났다. 7일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봉준호 감독과 올해 유럽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일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스페셜 대담’이 진행됐다. 두 감독의 열띤 대화로 행사 시간은 100분을 넘겼다.

하마쿠치 감독은 2015년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영화 ‘해피 아워’가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영화 ‘아사코’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올해 ‘우연과 상상’으로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급부상했다.

봉 감독은 “하마구치 감독의 오랜 팬으로서 궁금한 게 많고, 동료 감독으로서 ‘비밀’을 캐내고 싶다”며 격의없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속 자동차 씬은 어떻게 찍은 건가”부터 물었다. 이어 “감독으로서 부담이 있는 장면인데 영화에서 중요한 대화와 침묵의 순간이 자동차 안에서 펼쳐진다”며 “저는 ‘기생충’ 때 멈춰있는 차 안에서 촬영하고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했다”고 부연했다.

하마구치 감독은 “자동차 씬에 대한 질문만으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배우가 운전하는 상태에서 내가 트렁크에 숨어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런 장면이 찍히지 않을 것 같았다”고 답했다. 봉 감독은 “차 멀미는 안하나. 감독의 노동이 느껴진다”고 말하며 하마구치 감독을 치켜세웠다.

두 감독은 서로의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하마구치 감독은 “기본적으로 세밀한 연기 지도를 안 한다”면서 “대본 리딩을 굉장히 많이 반복하는데, 동작을 정하기 위해 서라기보다 연기자들이 대사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취지다. 자유롭게 두는 편”이라고 말했다.

봉 감독은 “배우가 어느 순간 뭔가 해내길 바라면서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가 있다”며 “요즘엔 어떻게 하면 배우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방향은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넓은 울타리를 쳐서 배우들이 그것을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선 영화 ‘기생충’ 촬영 당시의 에피소드도 공개됐다.

봉 감독은 “‘기생충’에서 거실 난투극을 찍을 때 스태프들이 소품으로 LP 30장 정도를 갖다놨다”면서 “갑자기 ‘저기서 음악을 골라볼까’하는 생각이 들어 그 중에서 귀에 익은 칸초네 앨범을 골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는 그게 관객들에게 큰 충격이었다고 하더라. 서울에서 이탈리아 영화가 개봉했는데 남진, 나훈아 노래가 나오는 것 같은 상황”이라면서 “그분은 이탈리아 국민 가수였는데 베니스영화제에서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부산=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