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연내 화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미·중 관계 전환점 마련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양측은 최근 확전(擴戰)을 자제하려는 시그널을 보내왔다.
미·중 갈등은 그러나 인권, 군사, 무역, 경제, 대만·남중국해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진행되고 있어 실질적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양측 관계가 더 악화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수준의 어정쩡한 봉합 전망도 제기했다.
미 고위당국자는 6일(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 회담 후 언론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양측은 제삼국인 취리히 공항 인근의 한 호텔에서 6시간 동안 비공개 회담을 했다.
미 고위 당국자는 “솔직하고 광범위한 논의가 생산적으로 이뤄졌다”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과 이뤄진 가장 면밀한 논의였다”고 평했다.
이 당국자는 “화상 정상회담 아이디어는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과 전화 통화에서 만나고 싶다고 말한 뒤 제안됐다”며 “정상회담에 대한 세부 사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양국 간 소통채널을 유지해 책임감 있게 경쟁을 관리한다는 정상 간 통화에 따라 이날 회동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또 “설리번 보좌관은 중대한 초국가적 과제 대응에서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 관여할 수 있는 분야와 양국 관계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법 등을 거론했다”며 “중국 측과 고위급 접촉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도 신화통신을 통해 낸 성명에서 “양 정치국원이 바이든 대통령의 최근 긍정적 발언 중요성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또 양국 관계와 국제적, 지역적 공동관심 사안에서 포괄적이고 솔직하며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중국은 최근 서로 갈등을 더 심화하지 말자는 시그널을 일부 표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은 중국을 억제하지 않고,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전날 양국 경제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닌 리커플링(재동조화)을 언급하며 중국과 만남을 원한다고 했다.
중국 역시 이 같은 발언에 긍정적 반응을 내놨었다. 중국으로선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갈등 관리에 나설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날 회동 결과는 이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AP통신은 “바이든 행정부는 집권 초기 중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접촉이 건설적이지 못한 것에 대해 좌절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미 행정부 관계자는 이날 회담을 취임 이후 가장 깊이와 존중이 있고 건설적인 것으로 묘사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앞서 지난 2월과 9월 두 차례 전화통화를 했다. 양측은 지난달 통화에선 서로 소통 채널을 유지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만남을 제안하면서 이달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양국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시 주석이 불참을 통보해 회담은 무산된 상황이다. 시 주석은 팬데믹 기간 해외 순방을 나선 적이 한 번도 없다.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까지는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중 관계는 대만과 남중국해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더욱 악화했다. 중국은 최근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전투기 56대를 출격시키기도 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우리는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압박과 강압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도발적 행동으로 지역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 인권 문제 등도 지속 거론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월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강제 노동 및 인권 침해를 비판하는 내용을 공동 성명서에 포함하도록 회담국을 설득하기도 했다.
설리번 보좌관 역시 이날 회동에서 인권 문제와 신장, 홍콩, 남중국해, 대만 등 중국이 민감해하는 분야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제기했다. 또 미국이 동맹 및 파트너 국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자국 국력을 위해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중국과 섣부른 합의가 공화당의 비판을 불러올 수 있다는 부담도 갖고 있다. 백악관은 미 상원에서 통과된 신장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에 대해 최근 “입장이 없다”고 밝혔는데, 공화당으로부터 “기후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중국의 지독한 인권 침해를 무시하기로 선택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상 수준의 관여는 중국과의 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하는 우리의 노력 중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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