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보다 업체 챙긴 마을이장에 위자료 배상 판결

입력 2021-10-06 15:24

주민보다 업체를 챙긴 마을 이장에 대해 법원이 주민 1인당 일정액을 배상하도록 위자료 지급 결정을 내렸다. 주민들의 민주적 의사 결정을 무시한 마을 관리자에게 정신적 손해 배상의 책임을 물음으로써 대규모 개발사업이 우후죽순으로 추진되는 제주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라는 지적이다.

제주지법 민사3단독 조병대 부장판사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주민 65명이 전 마을 이장 A씨(50)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1인당 30만원씩 총 19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제주시 선흘2리 마을회는 주식회사 제주동물테마파크가 마을 인근 곶자왈 60만㎡ 부지에 사자와 호랑이 등 야생동물 관람시설과 호텔 등을 조성하는 사업 계획이 알려지자 2019년 4월 마을총회를 열어 반대 84, 찬성 17표로 ‘사파리 동물테마파크’ 사업에 반대하기로 의결했다.

그런데도 당시 마을 이장이던 A씨는 사업자 측의 편의를 봐 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같은 해 7월 사업자 측과 ‘지역 상생 방안 실현을 위한 상호협약서’를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업체 측으로부터 1800만원을 건네 받았다. 또 마을 주민들이 A씨에 대해 명예훼손 등으로 소송을 제기하자 변호사 선임료 950만원을 대신 납부하게 했다.

재판부는 “A씨는 주민 대다수의 의사에 반해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상생 협약서를 체결한 후 업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며 “이는 이장으로서 부담하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위반한 불법 행위에 해당하고 마을 주민들이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다만 당초 주민들이 청구한 1인 당 100만원의 손해배상액보다 적은 액수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원고와 피고들의 관계, 피고의 위반 행위의 정도와 내용을 참작해 정했다”고 설명했다.

선흘2리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회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입장문을 내고 “주민들의 민주적 의사 결정을 무시한 채 사업자와 결탁한 마을 관리자에게 금전적 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결정한 것”이라며 “난개발로 신음하고 있는 제주사회에 큰 의미를 가지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