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인 가구 에너지바우처 사용률 감소세…정부는 노인 탓, 기후 탓

입력 2021-10-05 07:03
발급 받고도 사망한 사례 잇따르는데
“노인은 난방비 절약 습관”
“덜 덥고 덜 추운 기후 영향”
조정훈 “산업부, 적극적 복지행정해야”

노인과 장애인, 중증질환자 등 취약계층의 냉·난방비 부담을 덜기 위해 도입된 에너지바우처의 1인 가구 사용률이 해마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에너지바우처 지급 대상이지만 아예 신청하지 않거나 바우처를 지원받고도 사용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에너지바우처 지급 대상인 1인 가구의 경우 독거노인 등 고독사 위험도 크지만, 정부는 1인 가구 사용률 저조를 기후 영향이나 노인들의 특성 때문으로 보고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5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에게 제출한 에너지바우처의 가구원수별 집행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의 에너지바우처 사용률은 79.1%로 87.5%였던 2017년보다 8.4% 포인트 감소했다. 1인 가구의 에너지바우처 사용률은 2018년 83.4%, 2019년 78.0%로 최근 몇 년간 계속 감소세를 보였다. 2인 가구나 3인 이상 가구의 사용률과 비교해도 1인 가구의 에너지바우처 사용률은 낮은 편이다. 지난해 2인 가구와 3인 이상 가구의 에너지바우처 사용률은 각각 86.2%, 90.8%였다.




에너지바우처란 취약계층의 냉·난방비, 전기요금 등 에너지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일종의 무상 지원 쿠폰이다. 무상 지원인 만큼 소득 기준과 가구 특성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지원받을 수 있다. 소득 기준은 기초생활수급자로 한정되고, 세대원 중 노인, 장애인, 영유아, 임산부, 중증질환자가 있거나 한부모가족, 소년소녀가정이어야 한다.

에너지바우처 지급 대상 중에서도 1인 가구는 고독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공공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에너지바우처 지원 기관인 한국에너지공단이 사용률이 낮은 1인 가구에 대해서 한 것이라고는 고작 빨리 사용하라는 안내 문자메시지 발송뿐이었다. 그러나 휴대전화 사용이 익숙지 않은 노인에게는 문자메시지 발송만으로는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 대구 북구와 전북 남원에서는 홀로 살던 90대 할머니가 에너지바우처로 9만5000원을 발급받고도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충북 보은과 전남 완도에서도 70대 독거노인과 60대 중증질환자가 바우처를 쓰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됐다.

1인 가구의 사용률 저조와 관련해 에너지공단 관계자는 “(지급 대상) 1인 가구 대부분이 좁은 집에 살다 보니 냉·난방 필요면적이 적고 노인 비율이 높다. 노인들이 보통 난방비 아끼는 게 습관이 돼서 바우처 지원을 해도 사용량이 저조한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지난 5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에너지바우처 미이용률 증가와 관련해 “기후 변화에 따라 여름은 덜 덥고 겨울은 덜 추운 기후가 작용한 영향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용률이 저조한 가구를 특별관리대상가구로 지정하고 ‘찾아가는 콜센터’ 등을 통해 사용률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 정부는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사용률 감소 이면에는 매년 제자리걸음 수준인 신청률도 한몫했다. 지난해 에너지바우처 신청률은 93.3%로 1년 전보다 오히려 2.4% 포인트 줄었다. 조 의원은 “에너지바우처는 산업부가 주관하는 유일한 복지사업인데 신청률과 사용률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산업부가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신청률과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 복지 행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