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역 코로나19 확진자 전담병원이 정책적 혼선으로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가 10월 말 ‘위드 코로나’ 전환을 예고했으나 들쭉날쭉한 손실보상금과 의료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으로 대부분 전담병원의 고심이 커지는 형국이다.
4일 광주 북구 일곡동 헤아림 요양병원에 따르면 지난 1월 광주권 코로나19 확진자 전담병원 지정 이후 하루 평균 80~100여 명의 감염환자를 격리 수용하고 그동안 전담 치료에 집중해왔다.
병원 측은 만일의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일반 건물 대비 3배 수준 이상의 환기·공기청정 시설을 추가하고 전용 출입구를 포함한 병원 내 동선을 철저히 분리하는 등 병원 운영 체제를 ‘코로나19 시스템’으로 과감히 전환했다. 이전까지 입원 요양 중이던 150여 명의 노인도 모두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
신관 6개층 200여 병상에 의사와 간호사 등 80여 명의 의료인력을 배치한 이 병원에는 한때 5~6명의 의료인력이 파견돼 광주지역 코로나19 확산 예방에 든든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의료기관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겠다는 의료진 등 종사자들의 자부심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정부와 중수본이 지난 7월부터 전담병원에 대한 손실보상금을 대폭 낮추면서 이들의 자부심에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하루 16만 원이 넘던 평균 평상 단가는 7만 원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파견 의료진에 대한 수당도 한동안 끊겼고 그마저 2~3개월 만에 철수했다.
단기 파견인력에 지급하던 수당 등을 전담병원 측에 상당 부분 떠넘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정부와 중수본은 10월 1일부터 의사의 경우 30% 간호사는 50%의 인건비를 전담병원이 분담하도록 했다.
헤아림 요양병원의 경우 지난달 조직폭력배를 떠올리게 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신모(26)씨가 병원 5층 복도에서 난데없이 벌인 자살 소동이 일손 부족과 재정난에 시달리는 의료·경영진의 ‘번 아웃’을 부채질했다.
특수절도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이 확진자는 코로나19 감염 통보 직후 병원에 수용됐으나 날마다 병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골치를 썩였다. 아침저녁으로 온몸에 새긴 험악한 문신을 내보이며 병원을 활보했지만, 의료진은 무의미한 ‘강제 퇴원’을 경고하는 것 외에는 손을 쓸 수 없었다.
한마디로 속수무책이던 병원 측은 마지못해 규정에 따른 이튿날부터 ‘2인 병실’ 대신 ‘1인 병실’을 제공했다. 그런데도 이에 아랑곳없이 흡연은 그치지 않아 다른 병실 환자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신씨는 공황장애와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인 기저질환자이자 새벽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고 밤새 소란을 피우는 골치덩이었다.
본인이 휴대전화로 주문한 음식을 무조건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 애교에 가까웠다. 신씨에게 배달 음식을 가져다주던 간호사가 병동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크게 다치는 일까지 생겼다.
급기야 지난달 22일 밤 담당 간호사가 병실에서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담배를 가지고 나오자 “함부로 내 물건에 손을 댔다”고 항의하며 환자복을 벗어 던지고 5층 복도에서 투신하겠다고 난동을 부렸다.
112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해 1층 바닥에 ‘안전매트’를 까는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으나 코로나19 확진자라는 이유로 접근조차 하기가 힘들었다.
평소라면 경찰이나 소방서 대원들이 병실 복도로 진입해 제압할 수 있었지만 확진자와 접촉하면 본인은 물론 같은 부서 동료 등 전원이 2주간 격리조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한 번 출동으로 부서 또는 관서 업무가 통째로 중단되는 원치 않는 공권력 마비사태가 불 보듯 했다.
결국 비상 연락을 받은 병원 이사장 등의 간절한 설득 끝에 30여 분 만에 상황은 어렵사리 마무리됐다.
공권력의 사각지대가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발생한 셈이다. 따라서 행정안전부나 보건복지부 차원의 세부 방역 메뉴얼을 만들고 관련 시설과 인력도 확충해야 진정한 ‘K-방역’ 체계 수립을 할 수 있다는 여론에 힘이 실린다.
우여곡절 끝에 자살 소동을 일으킨 확진자가 완치판정을 받고 구속영장이 집행되자 병원 의료진 등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 측은 이를 계기로 중수본 측에 일관된 코로나19 정책과 ‘위드 코로나’ 시대의 메뉴얼 지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공익적 차원의 건의문 제출을 준비 중이다.
수배 중인 범죄 용의자와 정신질환자 등의 감염환자를 수용하는 ‘특수 전담병원’ 신설과 구체적 대응사례를 적시한 추가 메뉴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두 번째 전담병원이 된 헤아림 요양병원에 앞서 가장 먼저 지정된 경기 평택 더나은요양병원도 별반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 병원은 지난달 정부의 손실보상금 기준 변경에 도저히 누적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며 지정 취소를 이례적으로 공문을 통해 신청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전담병원들은 환자가 많아질수록 손해도 커지는 구조로는 감염병 대응이 어렵다며 꾸준한 지원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2, 제3의 코로나 등 감염병이 본격적으로 닥치기 이전에 사회적 공감대의 토대 위에서 ‘위드 코로나’ 메뉴얼 체계를 세밀하게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지난 8월 말 감염병 전담병원 76곳에 지급한 제17차 손실보상금은 991억 원으로 전달보다 30% 가까이 줄었다.
헤아림 요양병원 등은 “중수본 조치에 기본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일관된 정책 추진을 주문하고 있다. 감염병 전담병원의 특수성을 고려한 특단의 지원체계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헤아림 요양병원 최중호(52) 이사장은 ”민간병원 병상을 동원하기 위해 다급히 당근을 제시했다가 확진자가 주춤해지자 약속 조건들을 단숨에 손바닥 뒤집듯 하는 임기응변으로는 신뢰를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