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코딩(컴퓨터 프로그래밍) 업무를 하는 김민구(가명)씨. 그는 1년 전 한 소개팅 앱으로부터 외주를 받았다. 앱에서 제공되는 여성 프로필을 자동 생성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제작·관리해 달라는 의뢰였다. 이 앱은 시장 점유율 10위권 안쪽의 중견 플랫폼으로 통한다. 소개팅 앱을 사용해본 이용자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앱이다.
김씨는 이 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해당 앱측으로부터 비밀유지계약서를 요구받고 작성했다며 익명 보도를 전제로 취재에 응했다. 그는 2일 “의뢰받은 곳뿐 아니라 많은 소개팅 앱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소개팅 앱 리뷰 난에는 “결제를 한 후 여성 회원에게 대화를 시도했으나 답이 오지 않았다”는 불만 섞인 글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고객 유치 위해 ‘가짜 여성’까지 내세워…‘일단 결제’부터
코로나19로 이성 간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가 줄어들면서 소개팅 앱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이 크게 늘었다. 수요가 느는 만큼 소개팅 앱 시장도 빠르게 커졌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무분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소개팅 앱 시장에선 통상 여성 회원 비중이 높을수록 이용자들 사이 ‘좋은 앱’으로 평가된다. 앞서 김씨가 폭로한 ‘여성 프로필’ 생성용 매크로까지 도입되는 이유도 여성 이용자 수를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해 고객 유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다.
더욱이 대부분 소개팅 앱은 설치와 가입까지는 무료로 해 고객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성의 프로필을 보거나 대화를 신청하는 등 앱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려면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결제하면 앱에서 통용되는 재화로 교환해 주고, 이 재화를 이용해 매칭 기회를 이용하는 식이다.
예컨대 스카이피플은 하루에 한 번 소개팅 매칭 기회를 제공한다. 매칭된 상대가 마음에 든다면 긍정적 의사 표시를 해 상대의 매칭 수락을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OK’ 표시를 하기 위해선 25개의 ‘하트’가 필요하다. 25개의 ‘하트’를 얻기 위해선 5000원의 결제를 해야 한다. ‘OK’ 기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소개 사진을 보거나 추가 매칭을 시도할 때 돈을 지불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매칭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결국 돈으로 매칭을 사는 구조인 셈이다. 스카이피플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유료 시스템 운영 이유에 대해 “진심으로 인연을 찾는 사람들만 이용하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커피 한 잔 정도의 비용으로 OK를 누르면 진심인 사람들만 OK를 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앱 이용자들 사이에선 “과금이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개팅 앱을 6개월간 이용한 이창선(가명·27)씨는 “처음엔 대면 소개팅을 해도 돈은 드니까 하는 마음으로 비용 지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서도 “점점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구조였다. 무엇보다 돈을 들여 대화 신청을 해도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과금 유도 방식에 불만을 토로했다.
위법 행위 당했다면 공정위나 소비자원 문의
일부 소개팅 앱들의 과장·허위 광고도 문제다. 일부 소개팅 앱들은 ‘100만 회원 확보’ ‘여성 회원 비중 동종 앱 중 최고’ ‘가까운 거리 이성 100% 매칭’ ‘자취하는 여자 무제한 소개’ 등 확인 불가능한 자극적인 메시지로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소개팅 앱 점유율 2위 업체 ‘글램’은 “무료로 무제한 이성을 소개받을 수 있다”고 광고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허위 또는 과장된 정보에 속았거나 유료 결제를 하고도 제대로 된 이용을 하지 못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면 전자상거래법 위반 여부를 확인해 대처할 수 있다. 온라인 데이팅업체 대부분이 사업자등록상 ‘통신판매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판매 행위는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기업과 고객 간 거래(B2C)로 인정된다고 볼 수 있는 만큼 환불 등을 요구할 법적 근거는 있다.
위법 소지가 있는 업체의 행정처분을 원한다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피해구제를 원한다면 공정위 산하 한국소비자원에 문의하면 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개팅 앱이라는 특정 업체에 관한 규정이 있진 않으나 기업과의 비대면 거래인 만큼 청약 철회 날짜 등 명시된 법령이 있다”면서 “해당 소개팅 앱 업체에 전자상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면 서면 신고를 통해 행정제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단시간 안에 조치받기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 피해구제를 위해 소비자상담센터에서 상담을 신청받은 뒤 민원이 원활히 해결되지 않으면 피해구제(처리) 단계로 넘어가 합의를 권고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한국소비자원에 소개팅 앱 문제로 접수된 피해구제 신청 10건 중 구제된 사례는 절반(5건)에 불과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대부분 중도 계약 해지에 따른 환급 요구와 허위정보로 인한 피해 호소였다”면서 “해결되지 않은 나머지 5건은 업체에서 환급을 거부하거나 사실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경우”라고 했다. 해당 업체가 권고안을 거부하면 보상을 원하는 소비자는 민사소송을 통해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한다.
치열한 고객 확보 경쟁에서 비롯된 업계 특유의 폐쇄적 분위기도 소비자들의 피해를 키우는 한 요인이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업체 앱에이프 관계자는 “소개팅 앱들은 경쟁업체들을 의식해 성별 분포, 매출액 순위, 월간활성이용자수(MOU) 등 각종 데이터를 공개하길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천현정, 박채은, 김미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