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을 매각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미쓰비시가 불복 의사를 밝히면서 실제 절차 진행까지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항고 여부와 관계없이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압류 명령과 달리 매각 명령은 미쓰비시가 불복하면 진행할 수 없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민사28단독 김용찬 부장판사는 전날 강제징용 피해자 김성주(92) 양금덕(92) 할머니가 “미쓰비시의 국내 특허권과 상표권을 매각해 달라”고 낸 신청에 대해 특별현금화(매각) 명령을 내렸다. 앞서 대법원은 2018년 11월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미쓰비시가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미쓰비시는 3년 가까이 배상을 이행하고 있지 않고 있다.
법원은 미쓰비시의 국내 특허권 2건과 상표권 2건을 매각해 김 할머니와 양 할머니가 각각 2억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결정했다. 통상 이러한 매각 명령이 떨어지면 자산에 대한 감정평가를 거치고 경매에 내놓는 방식으로 현금화가 진행된다. 두 할머니 측은 “법원과 매각 방법을 상의해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매각 절차가 바로 이뤄지긴 어려울 전망이다. 미쓰비시가 즉시항고 의사를 밝힌 때문이다. 앞서 특허권과 상표권을 압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도 미쓰비시는 항고와 재항고를 거치며 긴 불복 과정을 거쳤다. 미쓰비시가 이번에도 같은 방법을 취한다면 대법원에서 재항고에 대한 판단이 나온 뒤에야 특허권·상표권 매각과 현금화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강제징용 피해자 측 대리인은 “매각 명령은 재항고에 대해 법원이 기각할 때까지 효력이 멈춘다”며 “압류에 대해서 긴 불복 과정이 있었던 만큼 매각 절차도 지난하게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미쓰비시는 매각 명령에 대한 즉시항고 과정에서도 앞선 주장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압류 명령에 불복하면서 미쓰비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구성된 중재위원회에 의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법원의 강제집행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대전지법은 미쓰비시의 항고를 기각하면서 “집행채권이 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대법원도 이 판단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