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만들던 손에 연필 쥐니…같은 세상인데 새로운 세상 사는 듯”

입력 2021-09-24 05:53
김복남씨의 '부채와 연필' 시화 작품.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제공

“가난은 어린 나를 부채와 함께 가두고/ 학교는 먼 세상 이야기였다.//…내가 제일 잘하는 부채 만들던 손에/ 이제는 연필도 함께 있습니다./ 같은 세상인데 새로운 세상을 사는 듯//오늘! 행복합니다.”

남원시평생학습관 소속 김복남씨가 쓴 ‘부채와 연필’이라는 제목의 시의 한 구절이다. 그는 어렸을 때 글을 배우지 못해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의지하며 살다 지난해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평생 부채를 만들어 팔아 살아온 그는 부채 대신 연필을 손에 쥔 채 글을 배웠고, 그렇게 남편이 떠난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글을 배운 이후 그가 만난 세상은 분명히 어제와 같은 세상인데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다. 그런 마음을 고스란히 시에 담아냈다.

김씨의 시는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9월 ‘문해의 달’을 맞아 실시한 제10회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 최우수상으로 선정돼 전시됐다. ‘글자에 담은 희망의 여정’을 주제로 한 이번 시화전에는 모두 100점이 전시됐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고단했던 삶부터 글을 배운 뒤 세상과 소통을 시작하며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노인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정옥순씨의 '내 손' 시화 작품.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제공.

최우수상을 수상한 단양군청 평생학습센터 소속 정옥순씨의 시화 제목은 ‘내 손’이다. 꼬부라진 본인의 손가락을 보면 고생한 세월이 떠오르며 눈물 날 때도 있지만 볼품없는 ‘내 손’은 열 두 돈 금반지 낀 손가락보다 아름답고 고귀한 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색연필로 그린 울퉁불퉁한 손 위에 꾹꾹 눌러쓴 시를 통해 지난 삶이 때론 애달프지만 자랑스럽다고 고백하는 듯하다.

최순자씨의 '검정 봉다리 안에서 피는 꿈' 시화 작품.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제공.

최우수상을 수상한 부천동종합사회복지관 소속 최순자씨는 ‘검정 봉다리 안에서 피는 꿈’이란 제목의 시를 썼다. 뒤늦게 글을 배우는 사실을 누가 알면 어쩌나, 창피한 마음에 검정봉지 안에 숨겨놓은 초등학교 책을 ‘자라나는 꿈’이라고 표현했다. “동화책 읽어 달라는 손녀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읽어 줄 수 있는 지금은 눈물이 납니다” 그는 시에서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서 예쁘게 꽃을 피우겠다는 다짐을 드러냈다.

민기자씨의 '새 세상이 열린다' 시화 작품.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제공.

특별상을 수상한 신갈야간학교 소속 민기자씨는 2차례나 폐암 수술을 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학교에서 받은 테블릿을 통해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으며 느낀 보람과 기쁨을 ‘ 새 세상이 열린다’는 시를 통해 표현했다.

양순자씨의 '처음 소풍을 다녀와서' 시화 작품.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제공

특별상을 수상한 유성구종합사회복지관 소속 양순자씨는 70세가 넘어 현충원으로 첫소풍을 가게 됐다. 한글을 배운 덕분에 연평해전의 희생자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며 뒤늦은 배움의 감사함을 시를 통해 전하고 있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글자에 담은 희망의 여정’을 주제로 제10회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을 개최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제공.

이번 전시회는 코로나19 예방 및 대응을 위해 국가문해교육센터 홈페이지에서 올 연말까지 진행된다. 온라인 전시관에서 작품을 본 누리꾼들은 ‘시도 글씨도 그림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당당한 당신을 응원합니다’, ‘갈퀴처럼 울퉁불퉁하지만 소중한 손입니다’ 등의 댓글을 달며 어르신들을 향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

박채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