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의 중국 견제를 위한 외교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호주 핵 추진 잠수함 기술 지원 등 일방적 정책 결정이 유럽 동맹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동맹과의 협력을 여러 차례 강조하며 봉합에 나섰지만, 미국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전망이 제기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연설에서 “우리는 끈질긴 전쟁의 시대를 마무리하면서 끈질긴 외교의 새 시대를 열고 있다. 미국은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인도·태평양과 같은 지역, 그리고 우선순위로 초점을 돌리고 있다”며 “동맹, 파트너와 함께 유엔 같은 다자기구에서의 협력을 통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의 안보와 번영, 자유는 그 어느 때보다 상호 연결돼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미래를 위해 파트너와 협력해야 한다”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함께 일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신랄한 어조와 대조된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동맹’(allies)과 ‘파트너’(partner, partners) 단어를 각각 8차례, 16차례 사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인종이나 민족, 종교적 소수자를 표적으로 삼고 억압하는 일이 발생했을 땐 이를 지적하고 규탄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신장’ 지역을 거론했다. 또 “동맹과 우방을 옹호하고, 약자를 지배하려는 강대국의 시도에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견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표현한 것이다. 중국과의 경쟁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있으며, 이를 위한 동맹 전략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AP통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외교 정책 이후에도 미국은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국제 파트너라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연설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유럽은 미국의 일방적 아프간 철군 결정으로 대혼란을 겪는 과정에서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이 돌아왔다’는 외교 구호를 마냥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제기돼 왔었다. 여기에 프랑스를 무시하고 호주에 핵 추진 잠수함 기술을 지원한다는 결정까지 내리자 유럽 동맹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EU가 29일 예정된 미국과의 무역·기술협의회(TTC) 첫 회의를 연기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가 EU 집행위원회에 회의 연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회원국 중 하나가 용납할 수 없는 방식으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하엘 로스 독일 유럽 담당 장관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프랑스와 미국의 외교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라르 아로 전 주미 프랑스 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동맹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여기에 모욕까지 더했다”며 “주요 동맹국에 이런 종류의 공개 굴욕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아로 전 대사는 “오바마는 유럽에 관심이 없었다. 트럼프는 유럽에 적대적이었다. 바이든은 지금까지 유럽 전역에 큰 실망을 안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유럽 국가의 대사들과 “바이든 행정부에 유럽 정책이 없다”는 점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미국 의존적 외교전략 수정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바이든의 프랑스 무시는 유럽에 대한 경고’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미국이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는 만큼 EU는 자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썼다. 베른드 랭 유럽의회 국제무역위원회 의장은 ABC와 인터뷰에서 “이제 신뢰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나 대중국 견제 외교를 더욱 공고히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각각 회담했다.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파트너십 ‘오커스’(AUKUS) 정상들과 같은 날 만난 것이다. 24일엔 일본, 인도, 호주 정상과 백악관에서 첫 대면 쿼드(Quad) 회담을 한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