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외교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대화에 나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며 비핵화에 대한 외교적 접근 기조를 강조한 것이다.
실용적 대북 외교라는 대북 정책 방침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기 위해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또 “한반도와 지역 안정을 증진하고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할 실질적인 계획이 포함된 구체적인 진전을 모색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확보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란이 똑같이 한다면(핵 합의를 준수한다면), 우리도 완전한 핵 합의 준수로 돌아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뒤 “(북한도) 마찬가지”라며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대화에 나서는 등 먼저 행동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실용적 대북 외교 방침의 연장 선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실질적 계획을 포함한 구체적 진전 모색’이라는 표현을 썼다. 북한이 일단 외교의 장으로 나오면 구체적인 성과를 낼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다. 북한에 다시 대화의 공을 넘긴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할 실질적 계획’이라는 내용도 언급했다. 여기에는 미국 정부가 강조한 북한 인권 문제와 한국 정부가 중점을 둬 왔던 대북 인도적 지원 의미가 복합적으로 담겨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 등 위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외교적 접근 방식에 대한 원칙론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유엔총회 연설이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전례 없는 방식으로 협력해야 한다”며 단결을 촉구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20년 갈등을 끝냈다. 끈질긴 전쟁의 시대를 마감하고 끈질긴 외교의 시대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또 “2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이 전쟁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자리에 섰다. 페이지를 넘겼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군사력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하고 해외에서 분명하고 달성 가능한 군사 임무에만 관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동맹, 파트너와 함께 할 것”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원국의 단결과 협력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연합(EU),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쿼드(Quad) 등 미국의 동맹 관여 사례를 일일이 설명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의 안보와 번영, 자유는 그 어느 때보다 상호 연결돼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미래를 위해 파트너와 협력해야 한다”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함께 일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신랄한 어조와 대조된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나 “인종이나 민족, 종교적 소수자를 표적으로 삼고 억압하는 일이 발생했을 땐 이를 지적하고 규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일들이 신장이나 에티오피아 북부 혹은 세계 어느 곳에 발생하든지”라고 덧붙였다. 중국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우회적으로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초점을 인도·태평양 같은 지역으로 옮기고 있다. 우리는 유엔과 같은 다자기구를 통해 동맹, 파트너들과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동맹과 우방을 옹호하고, 약자를 지배하려는 강대국의 시도에 반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견제에 대한 입장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의 권위주의가 민주주의 시대 종말을 선포하려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틀렸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나 “우리는 신냉전이나 경직된 구역으로 나뉜 세계를 추구하진 않는다”며 “미국은 다른 분야에서 강한 불일치가 있다고 해도 공동 과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화하고 추구하는 어떤 나라와도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CNN방송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등에 맞서기 위해 군사력보다는 외교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