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난 아들에게 송편 빚는 법을 가르치자니 아들이 추석에는 보름달이 떠 떡이 동그란 모양이라고 말해준다. 요즘은 어린이집에서부터 전통문화를 배운다. 강강술래니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야 한다느니 심지어 떡을 찔 때는 솔잎을 깔아야 한다며 불 앞에 서 있는 엄마에게 훈수도 둔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제주의 문화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자랐다. 중학생 때인가 하루는 친구가 옥상에 제사에 쓸 생선을 널어놨다고 했다. 어떤 생선을 널어놨냐고 하니 그냥 생선을 널어놨단다. 그래 생선인 건 알겠는데 생선도 종류가 있지 않느냐 다시 물었더니 그제야 옥돔을 널었다며 제주에서는 옥돔을 고유명사처럼 생선이라고 부르지 않느냐고 설명해주었다. 그러고 보면 제주의 명절 차례 상에는 제주만의 독특한 환경이 반영된 것들이 꽤 있다. 섬 안에서도 한라산을 사이에 두고 제주시와 서귀포 지역의 떡 모양이 다르고 해안가 마을과 중산간의 음식이 다르다. 빵을 상에 올리는 문화도 이색적이다.
고사리와 돼지고기
제주에서 명절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식재료 중 하나는 고사리다. 보통 제주에선 산에서 나는 것, 바다에서 나는 것, 밭에서 나는 것으로 재료를 나눠 세 가지나 다섯 가지의 전(煎)을 마련한다. 그 중 고사리전은 어느 집에서나 반드시 하고 가장 정성을 들인다. 번철이 제일 깨끗할 때 가장 먼저 부치는 것이 전이기도 하다.
고사리전은 메밀 가루를 묽게 반죽해 달군 번철에 동그랗게 전병을 부친 후 고사리를 세 가닥 올리고 그 위에 달걀 물을 얹어 만든다. 고사리 가닥이 왜 세 개인가에 대해 여러 설이 있는데 어릴 적 할머니는 2개는 지게, 1개는 지팡이를 나타낸다고 하셨다. 조상님들이 드시고 남은 음식을 보따리에 담아 가시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나물의 기본도 고사리나물(탕쉬)이다. 말린 고사리를 하룻밤 물에 담가 불린 후 부드럽게 익을 때까지 삶아 건져 간장과 참기름을 붓고 물기가 없어질 때까지 살살 뒤집어 가며 볶는다.
이처럼 고사리가 제사에 요긴하게 쓰이는 재료이다 보니 제주에선 매년 봄이면 한해 쓸 고사리를 장만하는 게 집집마다 큰일이다. 그러나 고사리가 아무리 크고 좋아도 묘 주변에 난 고사리는 꺾지 않고 상에 올리지 않는다. 보통 제사에는 그늘에서 자란 크고 통통한 ‘먹고사리’를 쓴다.
의례 음식의 으뜸, 돼지고기
의례 음식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역시 돼지고기다. 제주에선 고구마 재배가 잘 되어 전분 폐기물이 많았다. 집집마다 돼지를 길렀고 전분 폐기물을 돼지 먹이로 사용했다. 마을에 큰일이 생기면 동네에서 기르던 돼지 중 적당히 자란 것을 수소문해 일을 치르는 데 사용했다. ‘고기’하면 보통 돼지고기를 말한다.
제주에서 적갈은 육적으로는 돼지고기적, 소고기적, 꿩적, 상어적, 소라적, 문어적 중 보통 세 가지를 준비한다. 돼지고기적을 기본으로 한다.
돼지고기는 덩어리째 삶아서 일정한 크기로 길게 자른 후 간장으로 양념해 대나무 적꼬치에 끼워 직화로 살짝 굽는다. 추석은 ‘팔월 맹질’(음력 8월에 든 명절)이라 동네에서 추렴한 고기가 상하기 쉬웠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추렴해 나눈 돼지고기를 덩어리째 삶거나 간장에 졸여 차롱(대나무로 만든 채롱)에 넣어 집안 가장 시원한 곳에 걸어두었다. 그리곤 명절 전날이 되면 직화로 구워 요리를 했다. 적 장만은 보통 남자들이 했다. 제주 적갈의 폭은 3~5cm로 지금보다 짧았다.
지역마다 다른 차례 상
제사상에 오르는 생선(제숙)은 지역마다 달랐다. 서귀포 지역과 제주 서부 한림 쪽에선 주로 옥돔을 올렸다. 제주 동부 김녕을 중심으로 세화 쪽은 우럭을 썼다. 제주시는 우럭, 옥돔, 조기를 두루 썼다.
제주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옥돔을 생선 중의 으뜸으로 쳤다. 제숙을 장만하면서 ‘생선’이라고 하면 옥돔을 말한다. 해안 지역에선 소고기적 대신 문어나 소라적을 상에 올렸다.
제주에는 예부터 쌀보다 메밀 생산이 많았다. 제주 전역에서 메밀묵적을 제례 음식으로 사용했다. 당해 생산한 메밀 가루를 묵으로 만들어 고기 적처럼 잘라 짝수로 꼬치에 키운 뒤 간장과 참기름을 발라가며 숯불에 굽는다. 메밀묵적 외에도 제주시 지역에선 메밀쌀을 물에 불려 만드는 청묵적을, 서귀포 지역에서는 제주시만큼 메밀이 흔하지 않은 탓에 밀가루적을 즐겨 했다.
카스텔라도 제상에 진설
우리나라 추석의 별식은 송편이다. 지역마다 모양은 달랐다. 서울 송편이 작고 앙증맞다면 강원도의 송편은 묵직하고 투박하다. 제주는 제주시의 송편은 동그란 보름달 형태에 가운데가 한라산 분화구처럼 살짝 들어가게 만든다. 반면 서귀포 지역 송편은 통통한 조개 모양이다.
메밀로 만드는 떡으로 제주엔 빙떡이 있다. 메밀 가루를 반죽해 전병을 지진 후 차롱 위에 꺼내 한 김 식힌 후 무채나물 소를 담고 말아 양 끝을 손으로 꾹 눌러 만든다.
빙떡은 제사를 준비하는 집에서 제례 음식으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손님 대접용으로 만들거나 제를 보러 오는 집에서 제물로 만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추석보다는 설이나 겨울 제사상에 주로 올렸다. 여름엔 메밀이 쉽게 상하고 여름 무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여름에 빙떡을 만들 때에는 소로 통팥을 넣었다.
제사 떡은 우주 삼라만상을 의미했다. 가장 밑에 땅을 뜻하는 네모난 제펜(시루떡)을 깔고 그 위로 밭을 의미하는 은절미와 해를 의미하는 동그란 절변, 달을 의미하는 반달 모양 솔변, 별을 뜻하는 우찍을 차례대로 쌓았다. 떡을 만들 때에는 메밀 가루나 쌀 가루로 모양을 만든 뒤 끓는 물에 삶아서 건진다.
풍성한 가을 화려한 육지부 떡과 달리 소 없이 메밀이나 쌀 원물 그대로의 맛을 살려 담백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맨 위에 올리는 우찍의 경우에만 삶거나 기름에 지져 참기름을 바른다. 최근에는 찹쌀로 기름 떡을 해서 상에 올린다.
제주에서는 카스텔라나 롤케이크, 단팥빵 등을 진설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빵이 귀했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을 조상님께 드린다는 의미다. 벼농사가 어려웠던 제주에서 쌀떡 대신 보리빵이나 술빵의 일종인 상외떡을 차례상에 올렸던 문화가 변형됐다는 설도 있다. 유교 제례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제주 사람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지금도 명절이 다가오면 동네 빵집마다 큼지막한 카스텔라를 구워 진열장에 내놓는다.
바쁜 섬 사람들, 간소한 ‘팔월 맹질’
제주의 제례 예법은 제주에 온 관리나 유배 온 성리학자들에 의해 전해졌다. 육지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초기에는 남녀가 함께 무리를 지어 무속 제례를 지내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남성 중심의 유교적 제례가 정착됐다. 그러나 제주의 환경과 제주 사람들의 삶의 여건에 따라 음식 종류와 조리법은 육지부와 차이가 있고, 문전제(門前祭) 등 무속 제례의 잔재가 유교식 제례에 혼합돼 전승되고 있다.
오곡백과가 여무는 육지부와 달리 제주에선 추석이 풍요로운 시기가 아니었다. 땅이 척박해 수확물이 적었다. 논농사 중심인 육지부와 달리 밭농사를 주로 하는 제주인들에게는 매우 바쁜 계절이기도 했다. 때문에 추석 음식은 설 명절에 비해 가짓수가 적고 간소했다.
제주 사람들은 추석이라는 말보다 ‘팔월 맹질’이라는 표현을 더 즐겨 쓴다. 풍족하지 않은 환경 탓에 추석 음식은 간소했지만 일가 친족 집을 빠짐없이 돌며 차례를 지내는 등 명절 화목을 다지는 풍속은 어느 지역보다 강했다. 특히 ‘명절을 쇤다’고 말하는 육지와 달리 제주에선 제사나 명절 뒤에 ‘먹으러 간다’는 표현을 주로 쓰는데 이는 제주 사람들에게 함께 모여 먹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