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도 꿈도 잃었다”…기약 없는 방학에 ‘망연자실’ 아프간 여학생

입력 2021-09-19 11:08 수정 2021-09-19 11:31
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이 지난 12일 수업을 위해 카불의 한 학교에서 이동하고 있다. 아프간 과도정부의 교육부 장관은 아프간 여성들이 대학원 과정을 포함해 대학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지만, 교실은 남녀 구분될 것이며 여학생들에겐 이슬람 복장 착용이 의무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AP뉴시스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희망은 아이들이었다. 많은 전쟁 중인 나라에서 학교 만큼은 문이 열려 있는 이유다. 그러나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아프가니스탄의 희망은 아직 반쪽짜리다. 아프간 여학생들은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기약 없는 방학에 좌절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18일(현지시간) 아프간 학교들이 개학을 맞았지만 중학교 이상 학교에선 남자들만 교실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교육부는 이날 성명에서 “모든 남자 교사들과 학생들은 학교에 등교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이 성명에 여학생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탈레반은 재집권에 성공한 이후 여성들도 남성과 똑같이 교육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희망을 잃은 아이들
배움을 열망하던 여학생들은 좌절했다. 변호사를 꿈꾸던 한 여학생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일어나면 ‘내가 왜 사는지, 집에만 머물며 누군가의 청혼을 기다려야 하는지, 그게 여성 삶의 목적인지’ 스스로 묻는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나의 어머니는 문맹이었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무시하고 괴롭혔다. 딸이 어머니처럼 되길 원치 않는다”고 우려했다.

헤라트 서부 도시에 거주하는 나르주 후사이니는 WSJ에 “의사가 돼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꿈을 갖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반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며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생은 CNN에 “학교로 돌아가 내 꿈을 키우고 싶었지만,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며 “탈레반이 등교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와 희망은 영원히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카불의 한 여고 교사는 “지금 여학생들은 모두 우울한 상태”라며 “일부 학생들은 마지막 학기를 이수하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 보장?…90년대에도 공식적인 여성 교육 금지 없었다
현지 바흐타르 통신에 따르면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조만간 여학교도 개학할 것”이며 “관련 절차와 교사 배치 등에 관한 세부 사항들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탈레반은 치안 상황이 개선되면 여학생들의 등교를 재개할 뜻을 지속적으로 내비치고 있지만 이는 25년 전의 표현과 크게 다르지 않다. WSJ에 따르면 탈레반은 과거 집권기에도 치안 문제로 여학생들의 교육을 제한했지만 이들의 교육을 공식적으로 금지한 적은 없다.

헤더 바 휴먼라이츠워치 여성인권과 공동이사는 “아프간 여성들은 1996~2001년 공부하거나 일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인내심을 갖고 결코 돌아오지 않을 날을 기다려야 했다”며 “(여학생들에 대한) 제한 조치가 끝날 것이라고 낙관할 수 없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탈레반은 자신들의 통제에 놓인 지역에서도 유사한 정책을 펼치며 수년간 여학생들의 교육을 막아왔다.

다만 국제사회의 압박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엔은 탈레반에 여학생들의 등교 허용 시기를 명확히 할 것을 촉구했다. 헨리에타 포레 유니세프 사무총장은 이날 “여학생들이 교육에서 배제될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WSJ는 외교관들이 아프간 과도정부가 영구적인 교육 제한 조치를 내리지 않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부 폐지하고 도덕 경찰 부활
탈레반은 노골적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17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아프간 과도정부는 수도 카불에서 기존 여성부 건물의 간판 자리에 ‘기도·훈도 및 권선징악부’ 현판을 내걸었다. 여성부를 철폐하고 그 자리에 이른바 ‘도덕 경찰’을 부활시킨 것이다.

권선징악부는 탈레반의 과거 통치기에 도덕 경찰을 담당하던 부처로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극도로 보수적으로 해석해 사회를 엄격하게 통제했다. 당시 권선징악부의 통제 속에 아프간에선 TV 음악 등이 금지됐다. 또 도둑의 손을 자르고, 불륜을 저지른 여성은 돌로 쳐 죽게 하는 등 참혹한 공개 처형도 허용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