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택시기사 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폭행사건을 덮어준 의혹을 받았던 경찰관도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의 ‘봐주기 수사’에 검찰의 처리 지연으로 사건 발생 10개월 만에 관련자들에 대한 기소가 결정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박규형)는 16일 이 전 차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및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 전 차관이 지난해 11월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귀가하다 운전 중인 택시기사 목을 움켜잡고 밀치는 등 폭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앞서 택시가 정차 중이었다는 등의 이유로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고 밝혔었다. 검찰은 이 같은 경찰 처분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특가법 조문에는 운전자가 승객의 승하차를 위해 일시 정차한 경우도 운행 중인 상태로 본다고 적혀있다.
이 전 차관은 택시기사 A씨에게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혐의도 받는다. 자신의 형사사건 증거를 직접 인멸한 경우는 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전 차관은 택시기사에게 증거인멸을 교사해 혐의가 성립된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영상을 삭제한 A씨의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서는 재판에 넘기지 않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A씨가 폭행 사건 피해자인 점, 이 전 차관 요청으로 영상을 지운 점 등이 참작됐다.
사건 담당인 서울 서초경찰서 B경사도 불구속 기소됐다. B경사는 폭행 동영상을 확인하고서도 단순폭행죄를 적용해 내사종결 한 혐의(특수직무유기)다. 폭행 영상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허위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작성해 결재를 올린 혐의(허위공문서 작성)도 있다. 다만 상관인 경찰서장 등은 동영상 존재를 보고받지 못했고 부당한 지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불기소 처분됐다.
경찰은 이 전 차관이 당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였다는 점에서 사건 처리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권투선수 장정구씨는 지난달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는데, 입건 없이 내사 종결됐던 이 전 차관 사건과 비교된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이 전 차관 폭행 사건 고발이 접수된 뒤 수사에 나섰는데 사실관계가 뚜렷한 사건인데도 처리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검찰은 지난 7월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은 후 경찰 관계자들을 추가 조사하고 부장검사 회의를 열어 사건 처리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여러 의혹들을 해소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철저히 수사했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