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1950년 부친이 울산 갑구 민의원 선거에 낙선하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기술자가 되기 위해 부산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마침 학교 근처에 미군 부대가 있어서 미군 병사들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있었고 교장 선생님과 부대장 간 통역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조 목사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때 폐병에 걸린다. 그는 질병의 고통 속에서 영어사전을 외우고 교과서를 독파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다 세 살 위 누나의 친구로 병문안을 온 동래여고 학생 김정애를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게 됐다.
병이 호전되지 않자 공기가 맑은 고향에 내려가 휴양을 하면서 부산으로 통원치료를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인 켄 타이즈 선교사가 부산의 한 거리에서 인도하던 천막 부흥회에 참석해 은혜를 받게 됐고, 선교사의 통역을 도우며 기독교의 진리를 깨닫게 됐다.
분명한 확신이 없어 신앙적으로 갈등하던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금식기도를 했고 어느 날 찬란한 광채 속 나타나신 예수님을 환상 중에 만나고 성령 충만을 체험한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1956년 서울에 올라온 조 목사는 순복음신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여기서 평생 목회의 동역자이자 장모인 최자실 목사를 만난다. 조 목사는 탁월한 영어 실력을 인정받아 학교장 존 허스톤 선교사의 통역을 맡았고 가정교사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