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미국이) 탈레반에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인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공화당 소속 마이클 매콜 하원의원)
“대다수 미국인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고 싶어 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화당 소속 스티브 섀벗 의원)
13일(현지시간) 미 하원 외교위 청문회 장면이다. 이날은 미 의회가 바이든 행정부의 아프간 철군 관련 청문회를 본격 시작한 날이다. 예상대로 공화당은 철군 전반을 미국의 ‘굴욕’ ‘재앙’으로 표현하며 바이든 행정부에 비난을 퍼부었다.
아프간 청문회 본격 시작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미군이 더 오래 주둔한다고 아프간군과 정부가 더 자립할 수 있다는 증거가 없다”며 “반대로 중국과 러시아 같은 전략적 경쟁자나 이란, 북한 같은 적성국은 미국이 20년 전쟁을 다시 시작해 아프간에서 또 다른 10년간 수렁에 빠지는 걸 가장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주둔이 실익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하며 방어에 나섰다.블링컨 장관은 아프간 철군 과정의 혼란을 지적받자 “철군 결정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정부로부터) 철군 시한을 넘겨받았다. 계획을 넘겨받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다만 철군 관련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했지만, 미군 철수 완료 전 아프간군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주말 현재 아프간에 약 100명의 미국 시민이 있고, 그들은 아프간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 “아프간에 전세기가 있었지만, 떠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아프간 철군이 2주가 지났지만 아직 미국인이 남아 있고, 구조 작업도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매콜 의원은 “중국이 바그람 공군 기지를 인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이 (아프간에) 진출하면서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크 메도우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트위터에 “탈레반이 아프간에서 출발하는 전세기를 막았고, 미국인들은 여전히 빠져나가려 한다는 것을 블링컨 장관이 인정했다”며 “우리는 인질 위기에 처해 있는데, 조 바이든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블링컨을 해고하라’는 성명을 통해 “재앙적 대처와 약한 리더십이 미국인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고 비난했다.
이날 청문회는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료가 아프간 철군 관련 의회 증인으로 나온 첫날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적어도 5개 의회 위원회가 아프간에서 미국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충돌은 앞으로 진행될 청문회의 예고편에 불가하다는 의미다.
바이든 행정부는 9·11 테러 20주기를 기점으로 주요 의제를 코로나19 대응과 경제 부흥 등 국내 문제로 옮기려 하고 있지만, 청문회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블링컨 장관은 당장 14일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도 출석해야 한다. 공화당은 미성년 여성을 아내로 데려온 아프간 난민 사례 등을 언급하며 난민 분류가 적절했는지 여부를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외신은 민주당이 마냥 방어만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내놨다. 실제 민주당 소속 로버트 메넨데즈 외교위원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빠른 철군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평가하지 못했다는 점에 실망했다. 정책 및 정보 실패의 끔찍한 결과”라고 비판한 바 있다.
같은 날 상원 정보위도 열리는데, 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마크 워너 의원은 “아프간 정부군이 왜 그렇게 빨리 붕괴했고, (미국이) 이와 관련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더 잘 준비하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고 지적했다. 상원과 하원 군사위도 이달 각각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아프간 아사 위기
블링컨 장관은 탈레반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되 아프간 정부가 아닌 비정부 기구를 통해 아프간인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 등이 아프간의 인도주의적 재앙을 경고한 것에 대한 답변이다. 앞서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식량과 의료 지원을 위해 6400만 달러의 새로운 자금을 원하기로 약속했다.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고위급 회의에서 “지난달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이후 국가 빈곤율이 치솟고 있다. 아프간인 3명 중 1명은 다음 식사를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며 “(사회) 서비스는 거의 붕괴 직전에 있다”고 말했다.
헨리에타 포어 유니세프 사무총장은 “약 1000만 명의 소년 소녀가 인도적 지원에 의존해 살고 있다”며 “올해 최소 100만 명의 어린이가 심각한 급성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사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