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닌자미사일’ IS 대신 아프간 민간인 10명 폭살

입력 2021-09-12 15:43
미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IS 폭탄 테러범이 아니고 미국 구호단체 현지인 직원이었다고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사진은 8월29일 카불에서 미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차량. 신화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국가(IS) 폭탄테러범을 겨냥했다던 미군의 미사일 공격에 사망한 사람은 가족을 위해 차에 물통을 싣고 귀가하던 미국 구호단체 현지인 직원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민간인 희생자가 3명이라던 미 당국 설명과 달리 당시 공격으로 어린이 7명을 포함해 일가족 1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 미 국방부는 거세지는 오폭 논란에도 “합리적 결정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NYT는 미군이 IS 대원으로 지목해 폭격한 대상이 미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국제 영양과 교육(NEI)’에서 2006년부터 전기기술자로 근무해온 제마리 아흐마디(43)라고 전했다.

미군은 지난달 29일 아흐마디를 폭탄 테러를 준비 중인 IS 대원으로 결론짓고 미행 끝에 그가 탑승한 차량을 공대지 미사일 ‘헬파이어’로 공습했다. 미군은 그가 IS 은신처를 방문해 차량에 폭발물을 실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NYT 취재 결과 해당 장면은 아흐마디가 가족에게 가져가려고 물통을 차에 싣는 모습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NYT는 당일 현장 상황을 담은 보안카메라 영상과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해 아흐마디의 행적을 조사했다.

영상을 보면 아흐마디는 사무실에서 물이 흐르는 호스를 가지고 나와 여러개 빈 플라스틱 용기를 채웠다고 NYT는 설명했다. 그는 아프간 정부 붕괴 후 물 보급이 중단되자 회사에서 집으로 물을 실어 날랐다는 게 동료들 설명이다. 영상에도 나온 회사 경비원은 NYT에 “내가 직접 용기를 채우고 그가 트렁크에 싣는 걸 도왔다”고 증언했다.

미군은 카불 주변을 운전하는 아흐마디의 차량을 계속 추적하며 일련의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다고 밝혔지만 아흐마디와 차량 동승자는 평범한 회사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NYT는 설명했다.

카불 공항 서쪽 인근에 세 형제를 비롯한 가족과 함께 사는 아흐마디는 당일 회사 소유 흰색 ‘코롤라 1996’ 차량을 타고 오전 9시쯤 출근했다. 그는 동료들과 시내 경찰서를 찾아가 인근 공원 난민에게 음식을 나눠줄 수 있도록 탈레반 측에 허가를 요청한 뒤 오후 2시쯤 사무실로 복귀했다. 미군은 카불 공항 북서쪽으로 약 5㎞ 떨어진 곳에서 표적인 흰색 세단이 IS 안전가옥으로 확인된 건물을 떠나는 것을 확인 후 감시를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미 전술사령관은 아흐마디가 자택 안뜰에 들어선 뒤인 오후 4시50분쯤 드론 공격을 지시했다. 목표물이 인구밀집 주거지역에 있었지만 드론이 성인 남성 1명만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여성이나 어린이, 비전투원이 사망하지는 않으리라 판단했다고 미 당국자들은 전했다.

하지만 당시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10명으로 어린이 7명이 포함돼 있었다. 사망자는 아흐마흐와 그의 세 자녀(각 20·16·10세), 아흐마디의 사촌 나제르(30), 아흐마디의 형제 로말의 세 자녀(각 7·6·2세), 그리고 3세 여야 2명으로 확인됐다. 미국이 발표한 민간인 사망자 수(3명)를 크게 웃도는 데다 절반인 5명이 유아를 비롯해 10세도 안 된 아이들이었다.

아흐마디가 차를 몰고 마당에 들어섰을 때 아이들은 반가워하며 차 안에 앉았다고 한다. 나제르는 목욕물을 기르러 갔다가 아흐마디를 맞았다. 로말은 아흐마디의 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내와 1층에 앉아 있었다. 그는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을 때 자동차 엔진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고 방에는 부서진 창문 유리가 흩뿌려져 있었다고 NYT에 설명했다. 아이들이 밖에 있다는 걸 알고 마당으로 뛰쳐나갔을 때는 조카이자 아흐마디의 아들인 파이잘(16)이 외부 계단에서 떨어져 있었고 머리와 몸에 파편이 박혀 숨을 쉬지 않았다.

가족들은 미국에 난민 정착을 신청한 아흐마디가 미국인들을 공격할 동기가 있었겠느냐고 NYT에 반문했다. 사촌 나제르는 약혼자와 결혼해 미국 이민을 신청할 계획이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폭격 후) 2차 폭발이 있었으므로 해당 차량에 폭발물이 있었다는 합리적 결론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NYT가 현장을 2차례 방문해 조사한 결과 2차 폭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과 영상을 검토한 전문가들은 미사일 공격과 그로 인한 차량 화재의 증거는 있지만 무너지거나 부서진 벽이 없고 초목이 훼손되지 않은 데다 입구에 움푹 들어간 곳이 한 곳만 있는 점을 지적했다.

NYT 보도 이후 추종 보도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미 정부는 자신들의 결정을 옹호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오폭 증거에 대한 질문에 “당시 공격은 우수한 정보에 기반했고 우리는 여전히 공항과 그곳에 근무하는 우리 남성과 여성에게 임박한 위협을 방지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고 스푸트니크는 전했다.

퇴직 영국 군인인 보안 컨설턴트 크리스 콥스미스는 이번 오폭에 대해 “적법한 표적임을 결정하기 위해 사용된 정보나 기술의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NYT에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