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23년 동안 맥줏집을 운영해 온 50대 자영업자가 생활고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1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식당 4곳을 운영하던 자영업자 A씨(57)가 지난 7일 자택인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시점은 발견 며칠 전으로 추정됐다. 그가 지인과 나눈 마지막 연락은 지난달 31일이다.
12일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는 A씨의 발인이 있었다. A씨의 20년 지기인 김수만(45)씨는 “단체업소에 손님 2명만, 9∼10시까지 받으라고 하면 장사를 어떻게 하나”라며 “탁상에 앉은 사람들은 계속 2주씩 (거리두기 단계 조정을) 미루는 결정만 하면 되겠지만 왜 희생은 자영업자만 해야 하는가”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만날 ‘나라에 곳간이 빈다’고 하는데, 그러면 곳간을 채워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급할 때 쓰려고 채우는 것 아닌가”라며 “나라는 안 망했지만, 국민이 다 죽는다면 곳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라고 한탄했다.
A씨는 1999년 서울 마포에서 맥줏집을 개업하며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입소문을 타면서 가게가 4곳으로 늘어났다. 가게 대표 메뉴가 방송에 여러 차례 소개돼 회식 장소로 인기였고, 연말이면 종일 단체 예약 연락만 받아야 했다고 한다.
A씨는 사업 규모가 커지자 직원들에게 업소 지분을 나눠줬다. 요식업계에선 드물게 주 5일제를 시행하고, 연차를 만들기도 했다.
순탄했던 사업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휘청였다. 코로나19 사태가 2년째 계속되면서 매출은 절반에서 3분의 1로 줄었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 하루 매출이 1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정부가 영업제한 조치를 강화한 지난해 말부터는 손님이 뚝 끊겼다. 운영하던 가게는 이미 몇 해 전에 100석 규모의 한 곳으로 정리했지만, 월세 1000만원과 직원 월급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이어졌다.
A씨는 숨지기 전 남은 직원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살고 있던 원룸을 뺐고, 모자란 돈은 지인들에게 빌려 채웠다고 한다. 숨진 A씨 곁에서 발견된 휴대전화에는 채권을 요구하거나 집을 비워 달라는 문자메시지들이 남아 있었다.
김씨는 “A씨에게 장사는 삶의 전부였다. 거의 가게에서 먹고 살다시피 하며 일만 했다”며 “옷도 사 입는 법이 없어 제 결혼식장에도 앞치마를 입고 왔더라”고 했다. A씨는 영정 속에서도 앞치마 차림이었다.
이어 “너무 황망하다. 이렇게 하려고 그렇게 억척스럽게 장사를 했을까요. 고작 이렇게 가려고”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A씨 빈소에는 그동안 고인과 함께 일한 직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온라인 추모공간에는 ‘감사했다’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