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건물 붕괴사고를 불러온 다단계 철거용역 등 재개발조합의 각종 계약비리에 대한 경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12일 전날 인천국제공항에서 압송한 철거브로커 문흥식(61)씨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붕괴사고 ‘몸통’으로 지목된 문씨는 사고 직후인 지난 6월13일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90일만인 11일 오후 귀국했다. 문씨는 비자만료 기한이 되자 불가피하게 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해 ‘흰색 방호복’ 차림의 문씨의 신병을 확보한 경찰은 코로나19 자가격리 차원에서 광주 서부경찰서 유치장에 ‘1인 입감’한 문씨를 상대로 재개발사업 철거·정비기반·시설 용역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한 경위와 금품수수 여부 등을 집중 조사 중이다.
문씨는 코로나19 PCR(유전자증폭)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문씨가 재개발조합장 조모(73)씨와 함께 철거업체 선정 등을 주도하면서 이면계약을 통해 불법 하도급, 석면철거 단가 부풀리기, 공무원·지역 정치권 유착, 지분 쪼개기 등에 적극 개입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선배 이모(72·구속)씨와 공모해 재개발조합 고문 자격으로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조합과 특정업체간 계약을 알선해주고 철거업체 2곳, 정비기반업체 1곳 등에서 수억원대의 돈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문씨는 한때 도시정비 대행업체 M사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경찰은 학동 재개발 구역의 지장물·일반 건축물 철거는 한솔기업이 맡고, 석면 철거공사는 다원이앤씨가 수주했으나 다시 헐값에 하도급, 재하도급이 이뤄지면서 부실 철거에 따른 붕괴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수사결과 일반 건축물의 경우 재개발조합→현대산업개발→한솔·다원이앤씨→백솔, 석면 철거는 조합→다원이앤씨→백솔, 기타 지장물은 조합→한솔·다원이앤씨·거산건설 등으로 계약과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밖에도 철근 등 철거 폐기물에 대한 이권과 지난 2018년 재개발조합장 선거에도 문씨가 적극 개입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문씨는 재개발조합장 조씨가 당선되도록 조직폭력배 출신 다수의 인력을 동원해 삼엄한 경호·경비를 맡았고 이후 친분을 이용해 이권을 챙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1994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1년6개월형이 확정됐다.
2007년 학동 3구역 재개발 과정에서도 특정 철거업체로부터 6억5000만원을 받아 챙겼다가 2012년 8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과 추징금 5억원 등을 선고받은 바 있다.
경찰은 문씨의 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체포영장 집행시한인 48시간 안에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광주경찰청은 붕괴사고 이후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붕괴원인·책임자 규명’과 ‘재개발조합 비리’ 등 크게 2개 분야로 나눠 수사를 벌여왔다.
‘헐값 재하도급’과 부실공사로 이어진 철거업체 선정, 수주업체간 입찰담합, 지역 정·관계 인사 로비의혹 등에 구체적으로 관여해온 문씨의 진술에 따라 그동안 베일에 싸여온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지 주목된다.
총면적 12만6400㎡에 최고 29층 아파트 19개 동 2282세대를 분양할 예정이던 학동 재개발 사업은 예기치 못한 철거건물 붕괴사고로 조합 임원들이 경찰에 줄줄이 수사대상에 오르면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학동 재개발 현장에서는 지난 6월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쪽으로 넘어지면서 승강장에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광주경찰청 관계자는 “붕괴사고 이후 형사과와 수사과 100여 명의 인력을 총동원해 사고 원인·책임자 규명, 재개발 비리 등 2개 분야로 나눠 수사력을 집중해왔다“며 “문씨의 신병을 확보한 만큼 재개발 주체인 재개발조합 비위전반에 대한 수사가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