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에 들이닥친 ‘돌돌홍(돌고 돌아 홍준표)’ 돌풍이 심상치 않다. 야권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독주 체제에 제동을 걸 후보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떠오르면서 정치권 전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다.
홍 의원의 상승세를 두고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홍카콜라’ 별명에 맞게 속 시원한 발언으로 MZ세대(1980~2000년대생)의 지지를 받으며 지지율 상승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견해가 다수다. 최근 윤 전 총장이 ‘고발사주’ 의혹으로 홍역을 치르는 상황에서 반사이익을 누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돌고 도는 ‘밈’의 주인공…인지도에 호감 더해져
‘홍찍자(홍준표를 찍어야 자유대한민국을 지킨다)’. 19대 대통령 선거 때 홍 의원의 선거 문구였다. 이 문구의 앞말을 딴 단어는 특정 신체 부위를 가리키는 듯한 용어로 여성들에게 큰 혐오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여당 지지자들은 홍 의원을 조롱하는 용어로 이 표현을 사용했다. 홍 의원의 과거 여성 비하 발언과 ‘돼지발정제’ 논란 등이 겹치면서 19대 대선 당시 청년들은 홍 의원에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이른바 ‘병맛’스러운 어감 때문에 인터넷에서 뒤늦게 ‘밈’(meme·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놀이나 유행어 또는 콘텐츠 등)으로 인기를 끄는 반전이 일어났다. 네티즌들은 해당 문구 앞에서 춤을 추는 홍 의원의 과거 방송 영상 이미지(짤)와 변형된 밈을 다시 소비하고 있다.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도 여전히 많지만 ‘꼰대’ 이미지가 강했던 홍 의원이 2030세대 네티즌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계기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2030세대가 만들어낸 ‘무야홍(무조건 야당후보는 홍준표)’, ‘무대홍(무조건 대통령은 홍준표)’, ‘돌돌홍(돌고 돌아 홍준표)’ 같은 인터넷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지난 4·7 재보선에 이어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의 위력을 체감하면서 ‘MZ세대를 잡지 못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박창환 시사평론가는 10일 “지난 대선과 재보선에서 세대 투표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는데 유일하게 변화 가능성을 보인 것이 2030세대였다. 정치권이 이들을 잡아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고 젊은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단어와 정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홍 의원은 심플한 것을 자주 내세우는데 이런 것들이 먹힌다고 볼 수 있다”며 “홍 의원은 또 지난 대선에 출마한 인물이기 때문에 이미 2030세대에게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다. 인지도가 낮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나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달리 젊은 세대의 지지기반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홍카콜라’ 속 시원한 발언에 매료
홍 의원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단어는 ‘홍카콜라’다. 홍카콜라는 40여만명이 구독하는 홍 의원의 유튜브 채널 이름이기도 하다.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해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직설적으로 본인의 의견을 표현하는 홍 의원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별명이란 평이 많다. 특히 ‘사형제 부활’ 같이 정치인들이 쉽게 찬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하는 등 그의 강한 이미지에 젊은 세대가 오히려 매력을 느낀다는 분석이다.
박 평론가는 “홍 의원은 사형제와 관련된 발언이라든지 특유의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많이 하는데 이런 것들이 단순하고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화법은 특히 경쟁자인 윤 전 총장 등 다른 후보들의 신중 어법과 대조되면서 더 주목받는 분위기다.
홍 의원은 지난달 31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20개월 영아 성폭행 및 학대 살해범’을 향해 “제가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이런 놈은 사형시키겠다”고 적었다.
반면 윤 전 검찰총장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를 방문했을 당시 사형제 관련 질문을 받자 “우리 시스템이 흉악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돼 있다면 대통령은 시스템의 문제를 잘 파악해서 국회와 협조해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당시 두 인물의 발언은 비교됐고, 젊은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홍 의원의 답변에 지지를 보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홍 의원 특유의 시원한 전달력이 청년들에게 먹혔다. 장황하게 얘기하지 않고 핵심만 딱 집어서 전달하는 화법이 유승민 후보나 윤석열 후보와 대조되는 소통 방식이다. 다른 후보들은 에둘러서 애매하게 이야기한다”고 평했다. 윤 교수는 또 “정책적인 부분에서도 대선 후보 중 유독 홍 의원만 2030세대가 좋아할 만한 청년 부동산 정책 등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다”며 “이런 공약과 홍 의원의 직설화법이 만나서 젊은 세대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고발사주 의혹’에 반사이익
경쟁자인 윤 전 총장이 ‘고발사주’ 의혹으로 타격을 입으면서 홍 의원이 반사이익을 봤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은 윤 전 총장 재임 시절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지난해 4월 김웅 미래통합당 후보(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여권 인사들의 고발을 부탁하면서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국민의힘 지지자는 아니지만 문재인정부에 실망해 민주당에 반감을 갖게 된 사람들이 윤 전 총장을 지지해왔다. 하지만 이들이 최근 고발사주 의혹으로 윤 전 총장에 실망하면서 그 표가 일부 홍 의원에게 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홍 의원의 지지율 상승은 홍준표라는 인물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소위 ‘반문정서’를 지닌 이들이 윤 전 총장에게 실망했다는 의견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사형제 관련 발언이나 고발사주 의혹 등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선거의 큰 틀을 보고 지지율을 분석하는 견해도 있다. 홍 의원 지지율 상승 추세는 특정 이슈에 대한 결과가 아니라 여당의 이재명 경기지사를 상대할 수 있는 후보를 찾기 위한 야권 유권자의 전략적 선택이란 분석이다.
박 평론가는 “최 전 원장을 지지하던 사람도 당선 가능성을 우선으로 보다 보니 홍 의원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마치 친문이 어쩔 수 없이 이 지사를 지지하는 전략적 투표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도 “상대적으로 유력한 후보였던 윤 전 총장이 구설에 올라 공격을 받다 보니 보수층에서는 대안으로 홍 의원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