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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mib.co.kr/issue/poortable/story1.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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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정(가명·41·여)씨는 세 가지 반찬으로 일주일을 산다. 매주 목요일 복지관에서 오는 반찬이 그의 생명줄이다. 8월 첫째 주 메뉴는 총각김치와 콩자반, 닭감자조림이었다. 그다음 주엔 깻잎김치와 오이소박이, 어묵볶음이 왔다. “너무 감사하죠. 반찬 없으면 정말 막막하거든요.”
경남 한 소도시에 사는 그는 4년 전 심장 혈관에 경련이 발생하는 ‘변이형 협심증’ 진단을 받으며 외부와 단절됐다. 몸이 아프면서 일자리를 잃었고 사이가 좋지 않던 가족과는 더 멀어졌다. 생계·주거급여로 나오는 월 85만원이 수입의 전부. 이 돈으로 월세(23만원)와 공과금을 내고 나머지는 병원비를 위해 아껴 둔다.
밥은 하루 두 끼, 어떤 날은 한 끼만 먹는다. “저 같은 경우 식비 지출은 거의 없어요.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검사나 약이 많아서 돈을 아껴야 하거든요….” 투병 생활 4년째, 패혈증과 급성췌장염이 한번 심하게 왔고 허리디스크와 저혈당·저혈압까지 합병증이 몰려와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음식을 해 먹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복지관에서 주는 반찬이 너무 고맙다. 하지만 매번 똑같은 식사는 고역일 때가 있다. “일주일 내내 반찬 세 가지를 두고 오늘 한 끼, 내일 두 끼 이런 식으로 아껴 먹다 보면 솔직히 먹기 싫을 때도 있거든요. 안 먹을 수는 없는데… 저도 사람이다 보니 그럴 때가 있어요.”
가장 최근 먹은 과일을 묻자 오씨는 “5년 전 초복에 수박을 먹었다”고 했다.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은 제철 과일을 포함해 여러 가지다. “어떨 때는 짜장면도 진짜 먹고 싶거든요. 근데 참는 거죠.”
먹을 게 넘쳐나는 ‘먹방’(먹는 방송)과 ‘쿡방’(요리 방송)의 시대. 한국 사회에서 밥을 굶는 ‘결식’ 인구는 이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밥 먹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지갑을 연다. 주거비, 병원비로 돈이 다 새어나가 원하는 걸 먹는데 쓸 돈은 부족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2분기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월평균 식비 지출은 24만4000원이다. 하루 1만원이 채 안 된다. 소득 상위 20%(5분위) 가구는 두 배가 넘는 54만원을 식비로 썼다.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취약계층은 기본적으로 식품비에 쓰는 돈이 없다시피 하다”고 말했다.
밥에 돈을 쓰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매일 비슷하거나 같은 음식을 먹게 된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최근 한 달간 영양 취약계층 25명을 만나 식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25명 가운데 14명은 기초생활수급자였고 2명은 조건부 수급자, 2명은 차상위계층이었다. 연령대별로는 20대가 6명, 30대 1명, 40대 3명, 50대 7명, 60대 3명, 70대 이상 5명이었다.
구호단체인 기아대책, 저소득층 지원 단체인 서울 삼양주민연대·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 빈곤청년 지원단체 십시일밥, 사회복지관 2곳과 지역아동센터 1곳에서 이들을 소개받았다.
취재팀은 이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뒤 일주일간 식사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25명 중 13명이 사진을 보내왔다. 보내온 사진은 모두 129장이다. 사진 속 음식은 전날의 것이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한 영구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남승원(가명·63)씨는 일주일 중 사흘간 ‘설탕국수’를 먹은 사진을 보내왔다. 그의 고향인 전남에서는 별식이지만 현재 그에게는 주식이나 다름없는 음식이다.
지난 7월 29일 그는 집을 찾은 취재팀에게 설탕국수 만드는 법을 보여줬다. 삶은 소면을 물에 헹궈 밥그릇에 담은 뒤 ‘설탕’ 글씨가 붙은 노란색 플라스틱 통에서 설탕 두 스푼을 덜어 그릇에 털어 넣었다. 국수를 다 먹고는 “제가 좀 많이 먹죠”라면서 밥솥에서 밥을 퍼 남은 국물에 말아 그릇을 비웠다.
남씨는 사업 실패와 이혼이 겹치며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는 “옛날에 돈 잘 벌 땐 주위에 내가 사준 밥 안 먹어본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기초생활수급비로 월 56만원을 받아 관리비와 은행 이자 등을 낸 뒤 20만원 남짓한 돈으로 산다. “가끔 나물이나 국을 사도 여름엔 더워서 금세 상해버려요. 설탕국수가 제일 낫죠.”
남씨가 사는 임대아파트 내 사회복지관은 취약계층을 위한 무료 식당을 운영한다. 하지만 그곳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그는 “식당 정원이 100명이 넘는다는데, (나는) 1958년생이라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지금 대기자가 많대요. 같은 동에 사는 80살 넘은 할머니도 찾아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드린다’고 하더래요.”
남씨나 오씨처럼 삼시 세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영양적으로 불균형한 식사를 하는 국내 가구는 3% 안팎으로 추산된다. 질병관리청이 해마다 실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식품안정성 미확보’ 가구 비율은 2019년 기준 3.5%로 집계됐다. 식품안정성은 최근 1년간 ‘원하는 양과 다양한 음식’을 먹었거나 ‘다양하진 못해도 충분한 음식’을 먹은 경우를 의미한다.
식품안정성은 가구의 소득 수준과 정비례한다. 소득 수준을 5단계로 나눴을 때, 가장 높은 ‘상’ 가구의 식품안정성 미확보 가구 비율은 0.0%였다. ‘중’ 가구도 0.6%에 불과했다. 중~상 가구 대부분 원하는 음식을 골고루 먹고 있다고 답변한 것이다. 하지만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하’ 가구의 경우 식품안정성 미확보 가구의 비율이 13.0%였다. 2016년 조사에서 나타난 10.8%보다 더 악화했다. 잘 먹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식비를 최대한 덜 쓰는 삶
서울 관악구 대학동에 사는 최상헌(가명·38)씨는 식사 사진으로 거의 매일 라면을 보내왔다. 최씨는 지난 7월 29일 취재팀과 만났을 때도 아침과 점심으로 모두 라면을 먹었다고 말했다. “너무 많이 먹으면 곤란하니까 하루 2번 정도만 먹어요.” 그가 먹었다는 라면에 계란은 보이지 않았다.
과거에도 라면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부산 출신인 그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잡아 서울로 왔다. 10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4년 전 권고사직을 당한 뒤 공사장, 물류창고 등을 돌며 일했다. 어느 날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픽’하고 쓰러졌다. 다음 날 일 하러 갔는데 공사장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쟤 쓰러졌던 애’라면서 일거리를 안 주더라고요.”
한동안 일이 없던 최씨는 빨리 돈을 모으고 싶어 물류창고 일을 주야간으로 했다. 아팠던 허리가 더 안 좋아졌다. “그게 작년이었는데 눈이 핑핑 돌고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일을 못 하게 된 그는 식비 지출을 최소화하는 삶을 살고 있다.
최씨는 “대학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활비는 스스로 해결했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솔직히 예전에 직장 다닐 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이런 인터뷰 하는 것도 제 얼굴에 침 뱉는 기분이라서 좀 씁쓸해요.”
같은 대학동에 사는 박민석(가명·23)씨가 보내온 일주일치 식탁 사진도 단출했다. 그는 대학동에서 저소득층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에서 주 2회 도시락을 받아 일주일을 난다.
도시락 지원이 없는 날엔 인근 식당에서 3500원짜리 순두부찌개나 2500원 하는 잔치국수를 먹는다. 몸이 허하다고 느껴질 땐 패스트푸드 업체인 노브랜드버거에서 파는 그릴드 불고기 버거(1900원)나 데리마요 버거(2900원)를 먹는다. 가장 싸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박씨가 이런 생활을 시작한 건 6개월 전. 노무사 시험 준비를 위해 경기도 본가에서 서울로 오면서다. 지금 사는 고시원엔 조리 도구도, 요리할 공간도 없다. “대학 안 가고 편의점 일하고 생산직도 해 보고 이리저리 다 해 본 것 같아요. 그러다 노무 관련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여기로 왔어요.”
그간 모은 1000만원이 공부 밑천이다. 월 40만원씩 야금야금 생활비로 쓴다. 2년 내 합격이 목표다. “집에선 지원을 못 해줘요. 제힘으로 해야 해요.”
단조로운 밑반찬과 탄수화물 위주의 부실한 식사는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취재팀은 사진을 보내온 13명 가운데 6명의 일주일치 식사 사진을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에게 보내 ‘영양소 분석’을 의뢰했다. 윤 교수는 한국영양학회의 식단영양 분석 프로그램 캔프로(CAN-Pro)를 이용해 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의 하루 평균 에너지(㎉) 섭취량은 1077㎉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성인의 하루 평균 에너지 섭취량으로 조사된 1993㎉의 54.0% 수준이다. 이들 6명의 하루 평균 단백질 섭취량도 37g으로 2019년 조사에서 나타난 75g의 절반을 밑돌았다.
윤 교수는 “6명 모두 식사 종류가 매우 제한적이고 반복적이었다”며 “단백질과 주요 비타민, 무기질 등의 섭취가 부족할 경우 감염성 질환에 걸리기 쉽고, 당뇨 등 만성질환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복지 예산 늘어도 여전한 ‘식사 빈곤’
정부가 저소득층 복지에 쓰는 예산은 해마다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지난해 14조3106억원에서 올해 15조6624억원으로 9.4% 증가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저소득층에 의료비를 지원하는 의료급여(7조6804억원)다. 저소득층의 영양적인 수요까지 충족시키기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취약계층의 ‘식사 빈곤’이 질병 확대와 더불어 국가의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취약계층이 계속해서 불균형한 영양 상태에 있으면 건강 악화로 이어지고, 이는 곧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의료급여 수급자 수는 2018년 148만5000명에서 지난해 152만7000명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의료급여 예산도 지난해 7조3억원에서 올해 7조6804억원으로 9.7% 늘었다.
김상효 연구위원은 “아픈 사람들을 위한 의료 부담이 커지는 만큼 정부도 취약계층의 균형 있는 식생활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윤지현 교수는 “이제는 배가 고파서 굶어 죽는 사람이 없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만성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식단의 질적 향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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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2팀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listen@kmib.co.kr
[빈자의 식탁: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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