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국가 벨라루스가 러시아와의 ‘국가통합’(Union state)에 합의하기로 결정했다. 양국이 별도의 연합국가 창설 조약을 체결한 지 22년 만에 본격적으로 통합을 논의하게 됐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9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3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갖고 28개에 달하는 합병 프로그램 시행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10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리는 연합국가 각료회의에서 최종 승인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의 통합 논의는 금융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비즈니스 활동과 반테러 범죄조직의 자금세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장기적으로는 금융·에너지 시장이 통합된 거시경제정책과 국가결제시스템,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루카셴코 대통령 역시 “합의된 모든 프로그램은 양국의 복지 증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국은 구체적으로는 2023년 12월까지 단일 가스시장 조약을 체결하고, 석유 및 단일전력시장 창설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다음해까지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최대 6억 4000만달러(7400억여원) 규모의 차관을 제공할 계획이다.
다만 양국은 통화정책의 빠른 단일화는 유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푸틴 대통령은 “장기적으로는 통합할 필요가 있지만 가난한 국가가 고통을 겪는 유로화의 전철은 밟지 않을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벨라루스는 1991년 구소련이 해체하면서 독립한 뒤에는 친서방 정책을 펼쳐 왔다. 그러나 소련에 의존했던 산업구조가 빠르게 붕괴한데다 초인플레이션이 겹치면서 경제난이 시작됐다. 루카셴코 대통령 집권 뒤 1999년부터 러시아와 국가 통합 논의를 시작했다. 러시아는 2019년 국가 통합 논의 20년을 맞아 본격적으로 조약 실현에 고삐를 당겼다.
두 국가의 통합 논의가 본격화된 이유는 벨라루스의 경제난이 심각해진 탓이다.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러시아와 구소련권 국가 금융협의체인 ‘유라시아 안정발전펀드’로부터 15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받고 있다. 지난 8월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를 체포하기 위해 민항기를 강제착륙 시킨 사건이 있은 뒤부터는 서방 세계의 경제제재에도 시달려 왔다.
정치적 불안정도 벨라루스가 러시아에게 더 기대는 이유다. 이미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부정 의혹을 받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겪었다. 이후 푸틴 대통령을 찾아 정치적 지지를 요청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사실상 동유럽의 유일한 친러 국가로 분류되는 벨라루스를 사실상 흡수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미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해 우크라이나는 남부 몰도바와 루마니아 국경을 빼면 3면이 러시아에 포위된 상황에 처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는 벨라루스를 친미 국가인 폴란드를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