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 아내가 프랑스에서 양육하던 딸을 국내로 데려와 돌려보내지 않은 남편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미성년자 약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선고유예는 벌금이나 징역형 등 형의 선고 자체를 미루는 것을 뜻한다.
한국인 A씨는 2007년 프랑스인 B씨와 결혼했다. 이들은 2009년 프랑스에서 딸을 낳아 함께 생활했지만, 2012년 A씨가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별거를 시작했다. B씨는 프랑스 법원에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프랑스 법원은 2013년 딸의 상시거주지를 B씨의 거주지로 정하고, A씨에 대해서는 면접교섭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A씨는 2014년 7월 한 달의 면접교섭 기간을 받아 딸을 데리고 국내로 입국했다. 그런데 A씨는 정해진 기간이 지났음에도 딸을 프랑스로 돌려보내지 않았고, B씨와의 연락도 끊었다. 이에 B씨는 국내 법원에 딸에 대한 친권자 및 양육자 지정, 인도 소송을 청구했고 법원은 2016년 딸을 돌려보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A씨는 이를 따르지 않았고, B씨는 A씨를 고소했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는 장기간 B씨와 딸의 연락을 방해하고 서로 만나지 못하게 했다”며 “A씨의 행위는 피해아동에 대한 보호·양육권을 현저히 침해하고, 피해아동의 의사에 반해 자유로운 생활관계 또는 B씨의 보호 관계로부터 이탈시켜 자신의 사실상 지배 하에 옮기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2심은 다만 “A씨가 항소심에서 딸을 인도해 B씨가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면서 “벌금형을 2회 선고받은 것 말고는 전력이 없다”며 징역 1년의 선고를 유예했다.
대법원은 “피해아동의 의사와 복리에 반해 기존의 자유로운 생활 및 보호관계로부터 이탈시키는 ‘미성년자 약취’와 형법적으로 같은 정도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으므로, 미성년자 약취죄의 약취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며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부모의 분쟁 상황에서 면접교섭권 행사를 빌미로 미성년 자녀를 데려간 후 가정법원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보호·양육권을 가진 상대방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자녀를 인도받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방법으로 미성년 자녀의 복리를 침해하는 경우 형사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