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SK케미칼·애경산업 가습기살균제 사건 항소심에서 피해자들의 제품별 사용 시기를 다시 특정해 공소장을 수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 피해자는 옥시싹싹 등 성분이 다른 가습기 살균제를 중복으로 사용했는데, 재판부는 피해자별로 어떤 제품을 언제 사용했는지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해왔다.
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윤승은)에 피해자의 가습기살균제 사용 시기를 다시 특정하는 방향으로 공소장변경을 허가해달라고 신청했다. 기존 공소장에 적힌 제품별 사용시기가 불명확하다는 재판부 지적에 따른 것이다. 앞선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는 “어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는 것인지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며 “어떤 피해자의 경우는 가습기살균제 생산이 2002년부터 됐음에도 공소사실에는 2000년부터라고 되어 있다”고 했다. 다만 이번에 정리된 사용 시기도 피해자 진술에 기초한 것이라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용 시기가 중요한 건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인 이 사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납품한 업체와 판매한 업체의 관련자들이 과실범의 공동정범으로 묶여 기소됐기 때문이다. 검찰의 전제는 판매사의 임직원과 제조사 임직원에게 같은 주의의무가 적용된다는 것인데, 피해자별로 사용 시기가 달라 문제가 됐다. 예컨대 판매사에서 가습기살균제 판매를 중단한 이후에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가 있다면 그 부분까지 판매사가 제조·납품업체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하냐는 것이다.
앞서 유죄가 확정된 옥시 관련자들과의 공동정범 성립 여부도 쟁점이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성분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옥시 관련자들과 CMIT·MIT 성분으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SK케미칼·애경 관계자들은 공동의 주의의무를 어긴 공범 관계라는 게 검찰 시각이다. 이를 두고 항소심 재판부는 “두 제품의 물질이 다른데 (관련자들에게) 같은 주의의무가 적용되는지, 공동의 과실이 있는 것인지 근거를 명확히 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법리적 쟁점에 집중해 재판을 이끌어 가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셈이다.
다만 검찰은 과학적 쟁점인 CMIT·MIT 성분과 폐질환 사이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도 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검찰은 피해자 중 1명을 증인으로 신청하고, 환경부 산하기관이 주관한 추가 실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1심에서는 해당 성분과 천식 및 폐질환 사이 인과관계를 입증할 연구결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피해자들도 최근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형사소송법 이념을 언급한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항소심도 사실심 영역에 포함되는 만큼 사실관계를 다시 들여다봐 달라는 취지다. 의견서에는 증인신문과 별도로 재판에서의 피해자 진술권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도 함께 담겼다. 항소심의 세 번째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14일 서울고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