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것 없는 탈레반, 결국 “이슬람법에 따라 통치”

입력 2021-09-08 16:58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새 정부 수반으로 임명된 '은둔형 실세' 물라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 AFP통신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 최고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가 새 정부는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탈레반은 새 정부 윤곽도 발표했다.

7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아쿤드자다는 이날 “앞으로 아프간의 모든 삶의 문제와 통치 행위는 신성한 샤리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좀처럼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쿤드자다가 성명을 낸 것은 아프간 장악 이후 처음이다.

아쿤드자다는 “이슬람의 틀 안에서 인권과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진지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며 “가능한 빨리 국가를 재건하는 것이 정부의 최고 목표”라고 강조했다.

과거와 달리 국제사회와 적극 교류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아쿤드자다는 “이슬람 율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모든 국제 협정을 준수할 것”이라며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와 건강한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실업 문제와 경제발전을 위해 세수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외국인 투자와 국제무역의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탈레반이 인권 존중 등 유화적인 통치를 실현할 지는 미지수다. 탈레반은 과거 집권기(1996~2001년)에 샤리아를 앞세워 엄격하고 촘촘하게 사회를 통제했다. 특히 여성은 취업, 교육 기회가 박탈됐고 남성 없이는 외출도 불가능했다. 탈레반 조직원과의 강제 결혼도 빈번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물라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를 수반으로 하는 새 정부 명단을 공개했다. 60대 중반 이상으로 추정되는 하산은 대외 인지도는 낮지만 탈레반 내에선 존경받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집권기엔 외무부 장관과 부총리를 역임했고, 지난 20년 동안 탈레반 최고위원회인 레흐바리 슈라를 이끄는 등 ‘은둔형 실세’로 불린다.

알자지라 등 외신은 종교인보다 정치인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평가했다. 유엔(UN) 제재 대상 명단에 올라 있는 하산에 대해 유엔보고서는 “탈레반 창시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의 친밀한 동료이자 정치 고문”이라 묘사하고 있다.

다만 정부 수반 후보로 꼽혀왔던 2인자 압둘 가니 바라다르에 비하면 무게감이 떨어지는 경량급 인사로 분류된다. 바라다르는 부수반으로 부총리급 역할을 맡게 됐다. 오마르의 아들 물라 모하마드 야쿠브는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번 임시 정부에는 미국의 지명수배를 받는 강경파가 대거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각종 테러와 납치를 자행해왔던 탈레반 연계조직 ‘하카니 네트워크’ 출신으로 내무부 장관에 지명된 시라주딘 하카니와 난민·송환 장관으로 내정된 칼릴 하카니는 미 연방수사국(FBI)이 각각 1000만 달러,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고 수배해 온 인물이다.

압둘 하크 와시크 정보국장 등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됐던 전력이 있는 인물들도 줄줄이 고위직에 포함됐다. 반면 여성은 한명도 내각에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은 임시 정부의 배타적 구성에 우려를 표현했다. 미 국무부는 “오로지 탈레반과 제휴 조직원만 이름을 올렸고 여성은 아무도 없다”며 “몇몇은 소속과 행적도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탈레반이 과도 정부 내각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한다”며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탈레반을 평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