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1년 넘게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이번 화재로 앞으로 살길이 더 막막하네요.”
8일 오전 경북 영덕시장에서 만난 임종란(67·여)씨는 얼마 전 다리 수술을 해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불에 탄 가게를 둘러보고 있었다. 채소가게를 하는 그는 “14년 정도 가게를 하고 있는데 추석을 앞두고 구입한 5000만원 정도의 물건이 모두 불에 탔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4일 오전 3시 29분쯤 영덕시장에 화재가 발생해 79개 점포가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현재 화재로 소실된 영덕시장은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시장 곳곳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각종 집기와 추석 때 팔려고 쌓아 둔 물건들이 시커먼 잿더미로 변해 쌓여 있었다. 습하고 더운 날씨 탓에 시장 바닥에는 불에 타다 남은 쓰레기 더미 사이로 구더기가 득실대고 있었다. 상인들은 추석을 앞두고 없는 돈을 긁어보아 사둔 수천만원어치의 물건이 잿더미로 변한 것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이날 피해현장에는 상인들이 저마다 번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자신의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분주했다. 시장상인회가 피해보상을 위해 마련한 조치다.
이불가게를 하는 김구규(67)씨는 아침부터 부인과 함께 가게를 살피고 있었다. 부부는 사진을 찍은 뒤 가게 입구에서 불에 타다 남은 감자 몇 개를 골라 비닐봉지와 자루에 담아 챙겨 들고 힘없이 자리를 떴다.
어물전을 하는 박문휘(59)씨는 개인적으로 가입한 보험회사에서 나온 직원들과 가게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는 “가게에 보관하고 있던 현금도 모두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면서 “영덕군이 마련한 임시시장에 입주해 장사하려고 해도 당장 손에 쥔 현금이 없어 걱정이다. 빚을 내서라도 장사를 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덕군은 피해상인들을 위해 옛 야성초등학교 부지에 컨테이너 50동을 설치해 14일부터 임시시장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임시시장에서 장사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많은 돈이 필요하다.
조상원(70)씨는 “복구는 둘째치고 하루빨리 장사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우선 시급한 것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물건을 구입해 임시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영덕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뜻밖의 화재로 큰 상처를 입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지 않고 있었다. 피해 상인들을 돕기 위한 각계각층의 성금과 물품 기탁도 잇따르고 있다.
경북도는 행정안전부의 재난안전특별교부세 10억원과 지방비 등 20억원을 추가해 총 3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시장 앞에는 재난안전대책본부와 임시 군수실이 설치돼 이희진 영덕군수와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오전 오후 두 차례에 걸쳐 대책회의를 하며 실의에 빠진 상인들을 위로하고 생업에 복귀 할 수 있도록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이 군수는 “상인들이 피해를 봤는데 마음 편히 있을 수 없다”면서 “무엇보다 묵묵히 피해복구에 힘을 보태고 있는 상인들에게 감사하다.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영덕=안창한 기자 chang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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