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여년 전, 신라 월성 쌓을 때 제물로 바쳐진 여성 인골 또 나왔다

입력 2021-09-07 09:00
2017년 발굴에서 제사 의식을 지낼 때 제물로 바쳐진 인신공희(人身供犧) 인골 2구가 확인된 경주 신라 월성 서서성벽에서 역시 제물로 바쳐진 성인 여성 인골 1구가 추가로 발굴됐다.
2021년 발굴된 인신공희 여성 인골.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배)는 7일 현장에서 이 같은 추가 발굴 성과를 공개했다. 월성 서성벽의 인신공희는 국내 유일의 성벽 의례이며, 현재까지 신라가 최초로 축조한 왕성 월성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추가 조사 결과, 월성 기초부 공사를 끝내고 성벽을 거대하게 쌓아 올리기 전, 성벽과 문지가 견고하게 축조되길 바라는 인신공희 의식이 거행된 걸 확인했다. 이번에 추가로 확인된 여성 인골은 이전과 달리 곡옥 모양의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 팔찌를 착용하였고, 키가 약 135㎝ 전후로 체격이 왜소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과 함께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뼈는 말, 소 등 대형 포유류로 추정되며, 늑골 부위 위주로 선별하여 제물로 바쳐졌다.
2017년 발굴된 남녀 인골과 이번에 발굴된 여성 인골 위치.

인신공희 지점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약 1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1985년과 1990년 시굴·발굴조사에서 출처 불명의 인골 20구 이상이 일괄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번에 밝혀진 월성의 축성 작업과 비교한 결과, 이들 인골 또한 성벽 축조 과정과 관련하여 묻힌 것으로 밝혀졌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는 월성이 파사왕 22년(101년)에 축조된 것으로 등장하지만, 이런 축성 기록은 실제 축조 연대보다 많이 앞당겨진 시기로 여겨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서성벽 발굴조사를 통해 월성은 문헌 기록과 약 250년 차이 나는 4세기 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세기 초에 이르러 완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월성은 신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성으로 알려졌지만, 그 축조 수준은 토목공학적으로 다양한 축성 기술이 집약돼 있다. 먼저, 일정 간격으로 나무 말목을 박은 지정(地釘)공법과 목재, 식물류를 층층이 깐 부엽(敷葉)공법 등 기초부 공사를 통해 월성 지형의 연약한 지반을 보강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성벽 몸체를 만드는 체성부 공사에서는 볏짚·점토 덩어리·건물 벽체 등을 다양한 성벽 재료로 사용하여 높고 거대하게 만드는 토목 기술이 확인됐다. 월성 성벽은 너비 약 40m, 높이 10m 이상으로 추정돼 신라인들의 뛰어난 토목 기술과 당시 왕성의 웅장함을 그려볼 수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왕성 월성의 궁궐 배치와 성벽 축조 재료의 자연과학적 분석에 대한 조사,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