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탈영병, 시민이 감싸기도…” 진짜 D.P. 추적기

입력 2021-09-07 00:01 수정 2021-09-07 00:01
넷플릭스 드라마 'D.P.' 스틸.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헌병 군무이탈체포조(D.P)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드라마는 D.P 출신 작가가 자신의 경험담을 되살려내 쓴 작품이다. 폭력과 가혹 행위라는 한국 군대의 고질적 병폐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실제 D.P의 생활은 어땠을까. 육군 헌병대 출신 국민일보 기자가 동료 D.P병들의 특별한 일화를 취재했다. ①숨 막혔던 실제 탈영병 추적기부터 ②D.P 선발 방법 ③탈영병 뒷이야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D.P를 다룬다.

기자의 실제 경험과 D.P 예비역들의 제보를 녹여냈다. 기사 내용은 다양한 사례를 모아 공통부분을 추린 것으로 소속 부대, 복무 시기별로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탈영병 등 여러 실사례를 담은 만큼 모든 등장인물은 당사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가명 처리했다.

피시방 혹은 찜질방, 그들의 최애 ‘은둔지’

탈영병 추적은 입대 직전 그들의 흔적을 그대로 밟아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가족부터 여자친구, 주변 지인을 직접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한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발품을 판다. 영화에서 형사가 범인을 쫓는 과정과 흡사하다.

D.P들이 꼽는 탈영병의 주요 은둔지는 피시방과 찜질방 두 곳으로 압축된다. 모두 다중이용시설로 주위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장시간 머무를 수 있다. 비교적 적은 돈으로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어 탈영병이 몸을 숨길 장소로는 안성맞춤이다. 주변 탐문 결과 별다른 소득이 없다면 주소지 인근 두 곳은 가장 먼저 수색하는 ‘1번지’다.

탈영해도 카드와 통장 등은 바로 거래 정지되지 않는다. 탈영병의 흔적을 쉽게 찾아내려는 나름의 묘수다. 탈영병이 현금을 인출하거나 포털사이트 아이디로 접속하면 그의 위치는 실시간으로 즉각 담당 수사과에 전달된다.
피시방은 탈영병들이 숨어들기 가장 좋은 장소로 꼽힌다. 본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14군번 김창현씨가 이제 막 D.P를 달았던 일병 2개월 시절 처음 탈영병 체포를 나갔을 때도 그랬다. 탈영병의 흔적을 찾아 거리를 헤매던 그에게 담당 수사병이 연락했다. “○○피시방 42번 자리에서 그의 아이디로 접속 기록이 감지됐다.” 탈영병이 주거지였던 서울 강동구 인근 피시방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김씨는 곧장 해당 피시방으로 향했다. 피시방 주인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42번 자리 사용자의 신원을 물었다.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주인은 “뭔가 잘못 아신 것 같다. 단골이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는데….’ 자리에 가서 보니 피시방 주인의 말과 달리 쫓고 있던 탈영병이 맞았다. 김씨는 사수의 지시에 따라 옆자리에 앉아 그의 행동을 감시했다. 김씨는 “D.P가 된 후 처음 맞은 실제 상황이라 심장이 벌렁벌렁했는데 막상 탈영병을 보곤 웃음이 터졌다”고 했다. 그가 하고 있던 게임은 국내 1인칭슈팅게임(FPS)으로 대표되는 서든어택이었다. 군대에서 나와서 하는 게 고작 군대 게임이라니.

20분쯤 지나자 탈영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씨는 사수와 함께 조용히 뒤따라갔다. 그는 1평 남짓한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엔 작은 창문이 있었으나 성인 남성이 드나들기엔 불가능한 크기였다. 사수의 지시에 따라 김씨는 양팔에 잔뜩 힘을 준 채 출입문을 막아섰다.

사수가 탈영병에게 말을 걸었다. “김상곤씨 맞으십니까? 사단 헌병대에서 나왔습니다.” 김씨는 아직도 해당 탈영병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동공은 흔들렸고 손발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를 포박한 후 시민들 눈에 띄지 않게 가방에서 흰 수건을 꺼내 수갑을 가렸다. 이후 곧바로 가장 빠른 대중교통을 예약했다. 고속버스의 맨 뒷자리였다. 양옆에서 그를 호송해야 하는 만큼 맨 뒷자리가 아니라면 곤란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피시방 주인이 단골이라고 했던 이유는 카운터에 표시된 시간이 있었다. 당시 정씨는 해당 피시방에 23시간가량 머물렀다. 주인은 23시간이라는 시간만 보고 몇 차례 왔던 손님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두 번 쫓아서 두 번 놓쳤다

14군번 박현성씨는 열댓 번 나갔던 실제 체포 활동에서 “평생 잊지 못할 놈이 있다”고 회상했다. 눈앞에서 두 번이나 놓쳤던 그놈. 덕분에 담당 수사과장에게 무참히 깨졌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D.P.' 스틸. 넷플릭스 제공

8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얼굴을 생생히 기억한다. 모델 출신 정현준씨는 187㎝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전형적인 미남이었다. 그와의 첫 대면은 수사병으로부터 포털사이트 아이디로 접속했다는 정보를 입수해 그가 있던 피시방으로 찾아갔을 때였다.

“헌병대에서 왔다”고 하자 정씨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후 곧바로 2층 계단을 내려가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대부분의 탈영병이 헌병에게 잡히면 순순히 포박에 응하는 것과 매우 달랐다.

한낮의 추격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3분가량 뛰었을까. 정씨가 향한 곳은 경기도 수원 외곽, 작은 동네 슈퍼마켓이었다. 들어가니 막 지나간 듯 앞 유리문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박씨는 숨이 차 헐떡대며 “방금 들어온 사람 어느 쪽으로 갔느냐”고 주인에게 물었다. “왼쪽으로 갔다”는 답변을 듣기가 무섭게 뛰어나왔다. 인근 골목길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알고 보니 슈퍼 주인의 말은 거짓이었다. 모델 출신인 정씨가 탈영병인지 알 턱이 없었던 주인은 짧은 머리의 박씨가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정씨를 쫓아 들어오자 오히려 박씨를 조폭으로 생각해 순간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얼마 전 잘생긴 범죄자를 영웅시하는 팬클럽 기사를 봤는데 그때가 생각나더라”고 했다. 외모지상주의는 군대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탈영병을 쫓는 일은, 형사들이 용의자를 잡으러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본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정씨와의 ‘리벤지 매치’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틀 후 수원역 인근에서 다시 그를 마주했다. 박씨를 알아본 정씨는 다시 한번 반대 방향으로 질주했다. 곧장 옆 건널목을 건너더니 8차선 도로를 그대로 직진해 도망쳤다. 일순간 도로를 메운 시끄러운 경적을 뒤로하고 정씨는 또 한 번 박씨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박씨는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던데 그때 정씨가 딱 그랬다”며 “내가 우사인 볼트의 다리를 갖고 있었어도 그를 잡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놓친 정씨의 흔적은 쉬이 찾아지지 않았다. 박씨는 부사수와 함께 정씨 주소지 인근의 찜질방 5곳을 수색한 후 새벽 5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쯤 상급 부대 D.P한테 연락이 왔다. 탈영한 정씨를 잡기 위해 상급 부대 D.P와 함께 2개 조가 출동한 상태였다. 박씨는 “직속 관할에서 일어난 탈영이라 땀 나게 뛰었던 우리와 달리 설렁설렁했던 그들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한소리 해야겠다고 전화를 받은 순간 “정현준 잡았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상급 부대 D.P가 찜질방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길에 보니 옆에 자고 있던 사람이 정씨였다고 했다.

“D.P끼리 우스갯소리로 ‘탈영병은 항상 얻어걸린다’라는 말을 한다. 꼭 내 손으로 잡고 싶었는데….” 아직도 그날 수원역에서의 추격전은 박씨에게 깊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탈영병 찾아 삼만리…전국 어디든 간다

탈영병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에 출동한 D.P들은 위수지역 없이 전국을 넘나들 수 있다. 가령 등본상 주소지와 출신 대학교, 교제하는 이성이 있는 곳이 다 다르면 골치가 더 아플 수밖에 없다. 인근 사단 헌병대에 일일이 수사 공조를 요청해야 하는 데다 직접 다 찾아가 봐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D.P.' 스틸. 넷플릭스 제공

08군번 이순혁씨는 실제로 탈영병 하나를 잡기 위해 전국을 누빈 경험이 있다. “탈영병 하나가 있었는데 밖에 있을 때 다니던 대학교가 전라도라 주소지가 그쪽이더라고. 실거주지는 서울이고. 그런데 여자친구는 경남 창원에 살고. 부대는 강원도에 있었으니 그놈 잡으려고 전국을 누빈 셈이지.” 그는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했다.

통상 탈영병이 발생하면 여자친구, 가족, 친척, 지인 순으로 서서히 탐문 대상을 좁혀가며 조사한다. 당시 탈영병의 부모님을 면담했음에도 별다른 성과가 없자 박씨는 대학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전주로 가서 고된 발품팔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결정적 단서는 가까운 데서 나왔다. 담당 수사관이 근무 중인 부대로 찾아가 중대장, 행정보급관 등 주요 간부들과 면담한 결과 후임병으로부터 “새로 만난 여자친구가 창원에 산다”는 증언을 확보한 것. 결국 해당 탈영병은 당시 교제하던 여성의 집에서 체포됐다.

박씨는 “그때 이후 친했던 간부나 병사들부터 파악해 수소문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등잔 밑에서부터, 최근 정보를 먼저 추리는 게 핵심 전략이 됐다”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D.P 기자가 전하는 ‘진짜’ D.P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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