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90대 할머니 곁을 지켜 40시간 만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 4살 반려견이 대한민국 첫 ‘명예119구조견’이 됐다.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6일 오후 홍성소방서에서 반려견 ‘백구’의 전국 1호 명예119구조견 임명식에 참석했다.
백구는 치매 환자인 90세 할머니가 길을 잃어 논둑에 쓰러졌을 당시 할머니 곁을 지키며 구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사건은 지난달 25일 오전 발생했다. 홍성군 서부면에서 “새벽에 일어나보니 90세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은 인근 농장 CCTV에 잡힌 마을 밖으로 벗어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확인하고 의용소방대, 방범대 등 마을 주민들과 함께 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새벽부터 지속된 비때문에 수색에 난항을 겪었다.
할머니는 다음날인 26일 오전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곧 경찰의 공조요청을 받은 홍성소방서 구조대원까지 현장에 긴급 투입됐다.
실종 추정 40여 시간만인 오후 3시 30분, 경찰의 열화상 탐지용 드론 화면에 작은 생체 신호가 포착됐다.
벼가 자란 논 가장자리 물속에 쓰러져 있던 할머니를 곁에서 지키던 백구의 체온이었다. 백구가 추위로 쓰러져 있던 할머니 가슴에 기대며 체온을 유지한 덕분에 할머니가 극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발견 당시 저체온증을 호소하던 할머니는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돼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
이날 임명식을 통해 백구는 전국 1호 명예119 구조견이라는 영예를 안게 됐다. 소방청이 지난해 4월 사람을 구한 동물을 명예 소방견으로 임명할 수 있는 ‘명예소방관 및 소방홍보대사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한 이후 첫 사례다.
양 지사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백구는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만들어 모두를 감동시켰다”며 “백구가 보여준 것은 주인을 충심으로 사랑하는 행동 그 이상으로, 사람도 하기 어려운 지극한 효(孝)와도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와 백구 사이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유기견이었던 백구가 대형견에게 물려 생사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정성을 다 해 보살피며 가족의 연을 맺게 된 것이다. 이번엔 백구가 할머니를 구하며 은혜를 갚았다.
보호자 심금순 씨는 “유기견이었던 백구가 3년 전 큰 개에게 물렸을 때 도움을 줬고 그때부터 인연을 맺었다”며 “유독 어머니를 잘 따랐던 백구가 은혜를 갚은 것 같아 고맙다. 가족이나 다름없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계양 충남도의회 안전건설소방위원회 위원장은 “홍성은 화재로부터 주인을 구하고 숨진 ‘역개방죽 의견’ 설화가 있는 뜻깊은 고장이다. 이 설화는 불이 난 줄 모르고 잠든 주인을 위해 연못에 빠진 뒤 뒹굴며 털에 묻은 물로 주변 잔디를 적신 개가 주인을 구하고 숨을 거둔 이야기”라며 “우리 충남이 또 하나의 의로운 개 이야기를 갖게 돼 매우 감격스럽다”고 했다.
홍성=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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