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월급쟁이 사장’도 근로자…업무상 재해 인정”

입력 2021-09-06 14:12

형식상 대표자이지만 실제로는 월급을 받으며 일했다면 업무상 재해를 입었을 때 근로자로 보고 유족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유환우)는 사망한 A씨의 배우자가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한 패러글라이딩 업체의 사내이사이자 대표였던 A씨는 2018년 11월 1인용 패러글라이딩 비행 도중 추락 사고를 당해 숨졌다. 유족은 이를 업무상 재해로 보고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지만 공단은 “A씨는 회사의 대표자기 때문에 근로자라고 볼 수 없고, 업무와 재해 사이 인과관계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급여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유족은 공단의 결정에 불복해 심사청구를 제기했지만 이마저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유족은 A씨가 형식적으로는 대표자로 등기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근로자였다고 주장했다. 당초 회사 대표는 A씨의 동서인 B씨였는데 사고가 있기 4개월 전 사업자 등록상 대표가 A씨로 변경된 상태였다. B씨는 법정에서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 생활과 회사 운영을 겸해오다가 선수생활에 집중하기 위해 실무책임자로 A씨를 고용했다”며 “굳이 대표자 명의를 A씨로 변경한 건 관공서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서류상 필요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A씨가 회사의 형식적 대표자이지만 실제로는 사업주인 B씨에게 고용된 근로자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유족 손을 들어줬다. 회사 운영과 관련해 고액이 지출되거나 사람을 뽑을 때는 A씨의 보고를 받은 B씨가 의사결정을 했고,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것도 B씨였다는 점 등이 반영됐다.

A씨가 당한 사고와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근로계약서에서 정한 업무 내용 중 2인승 체험비행 자격 취득을 위한 비행연습이 명시돼 있다”며 “근로계약에서 정한 업무를 수행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사망했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