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립미술관 ‘성폭력’ 작가 작품 철회…‘뒷북’ 논란

입력 2021-09-06 11:28 수정 2021-09-06 16:19

제주도립미술관이 지난 6월부터 기획전으로 선보여 온 배병우 작가의 작품을 전시장에서 내리기로 했다. 미술관 측은 교수 재직 시절 학생 성폭력 전력이 있는 작가의 작품을 내건 데 대해 “(중요한 부분을)놓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국 최초로 성평등관 직제가 신설된 제주에서 지역 대표 미술관이 도민 민원을 받고서야 작품 철회를 결정했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제기된다.

제주도립미술관은 6일 배병우 작가 작품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배 작가의 작품은 지난 6월 22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석 달 간 예정된 기획전 ‘예술가의 사물을 표현하는 형식 관찰기’에 초청 작가 작품으로 내걸렸다.

전시는 예술가가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관람객과 공유하는 자리로 가족, 소나무, 백자, 대나무 4개 영역에 대해 유화 수묵화 사진 영상 등 총 71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중 배 작가의 작품은 소나무 부문에 전시됐다.

배 작가는 국내 대표 사진 작가로 2009년 사진 발명 170주년 당시 세계적 사진가 6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소나무 시리즈’는 동양적이면서 신비한 이미지로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찬사를 받아왔다. 1981년 서울예대 사진과 교수로 임용돼 2015년 정년퇴직했다.

배 작가는 지난 2018년 교수 재직 시절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제기 받았다. 이후 공식 사과하며 잘못을 인정했다.

이런 가운데 이달 5~6일 제주도청 신문고에 성폭력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민원이 올라오자 도립미술관 측은 6일 급히 작품 철회를 결정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6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이번 기획전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국·공립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이며 작가와 직접 접촉하는 과정이 없다 보니 놓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오늘 중 작품을 내리고 대체 작품을 찾겠다”고 했다.

민원 작성자는 글에서 “도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성폭력 가해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제주도는 성평등정책관이 존재하는 곳으로 매우 실망스럽고 분노스럽다”고 적었다.

이어 “미술관 측에 전화로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해당 작가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예술과 개인을 별개로 보았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며 “예술도 예술가도 현실과 동떨어져서 환상의 세계에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피해자에 대한)철저한 2차 가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