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단 한 번 실수로도 모든 걸 잃는다

입력 2021-09-05 20:40

그는 정말 오랜만에 학창시절 둘도 없던 친구를 만났다. 지나온 날들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았던 친구는 많이 취했고, 그도 장단을 맞추며 막걸리 몇 잔을 마셨다. 한풀이 하던 친구가 2차를 가자며 그를 부추기자 마지못해 집 근처로 가서 한 잔 더 하기로 했다. 집까지는 1km 남짓밖에 되지 않고, 별로 취하지도 않은 것 같아서 ‘별일 없겠거니’ 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것이 악몽의 시작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음주운전하다 적발되면 면직까지 될 수 있게 사규가 바뀌었으니 음주운전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귀가 닳도록 교육하고 있었다.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사정도 있었다. 중증 장애를 지닌 딸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오래도록 회사에 다녀야 했다. 그가 아니면 누가 중증 장애가 있는 딸을 돌본단 말인가.

이런 절박한 사정이 있었음에도 그는 설마 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얼마 되지 않아 단속 현장이 나타나자 그의 뇌는 합리적인 판단을 멈췄다.

‘벗어나야 한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 회사에서 해고될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딸은 누가 돌본단 말인가. 20여 년을 회사밖에 모르고 살아왔는데, 회사에서 잘리면 어떻게 산단 말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불미스러운 일로 경찰 신세를 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일로 걸리면 회사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그는 이미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던 그는 빨리 벗어나고 싶어 지체없이 중앙선을 넘어 유턴했다. 음주 단속을 피해 도주하는 차량을 단속하는 경찰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체 말이다. 그 경찰관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재빨리 그 현장을 벗어나서 골목으로 숨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던가. 제정신을 차리자 후회가 몰려오는데, ‘큰일 났다’며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그가 음주운전 단속을 하는 경찰을 치고 도망갔다는데, 경찰이 찾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경찰이 그가 운전한 차량의 로고를 보고 회사에 전화했고, 피해 경찰은 그의 차량에 옷깃이 살짝 스치면서 뒤로 넘어져서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다.

그는 바로 경찰서로 찾아가서 자수하고 사실대로 자백했다. 음주운전 단속을 피해서 도망가기는 했지만, 반대 차선에서 단속하던 경찰관을 보지 못했고 그를 치고 지나간 지도 몰랐다고. 음주 수치도 측정도 했는데, 면허 정지 수준의 수치가 나왔다.

그리고 1년여 동안 재판을 받았다. 다행히 자수와 자백을 한 점, 피해 경찰관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점 등 여러 정상이 참작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단호했다. 회사는 개정된 사규를 적용해 그를 면직했다. 후회한들 어쩌겠는가. 그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걸 잃었다.

요즘 음주운전으로 변호사를 찾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만취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인 윤창호씨가 세상을 떠난 후,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시행되고 있어서 예전처럼 가볍게 벌금형 정도로 끝나지 않는 영향도 있겠지만, 여전히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간과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게다.

명심하자. 음주운전은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음을.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