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정이 아닌 동경의 대상이 되자’고 말해왔습니다. 이제 정말 동경의 대상이 됐습니다.”
도쿄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75㎏급(K44) 국가대표 주정훈(27)은 지난 3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메세에서 동메달을 확정한 뒤 한참을 쏟던 눈물을 그치고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 선수들은 지난 5년간 혹독한 훈련으로 기록과 성적을 끌어올렸지만, 세상이 먼저 바라본 것은 경기력보다 장애였다. 주정훈은 그 동정 어린 시선을 걷어내고 장애인 유·청소년들에게 영감과 희망을 주는 영웅으로 우뚝 섰다.
도쿄패럴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의 마지막을 장식한 건 유병훈(49)이다. 유병훈은 5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출발한 남자 마라톤을 1시간41분44초로 주파해 출전자 15명 중 14위로 완주했다. 금메달을 차지한 스위스의 마르셀 허그(1시간24분02초)보다 15분 이상 늦은 기록이지만,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유병훈은 장애인·비장애인을 가리지 않고 한국 육상이 세계에서 맹위를 떨칠 날을 꿈꾼다. 유병훈은 “한국에서 육상은 비인기 종목이다. 비장애인 육상도 마찬가지다. 내가 비록 좋은 결과를 만들진 못했지만, 육상 선수들에게 동기와 자극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애인 선수들에게 패럴림픽은 이런 대회다. 신체와 인식의 장벽에 굴복하지 않은 투혼, 그 결실로 쟁취한 승리의 환희, 패자를 격려하는 존중, 여기에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인류의 도전 과제를 함께 극복한 협력이 모여 도쿄패럴림픽을 한 편의 드라마로 완성했다.
아프가니스탄의 포화 속에서 선수들의 출전을 끌어낸 연대의 정신도 빛났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장악된 수도 카불을 극적으로 탈출한 자키아 쿠다다디(23)는 지난 2일 태권도 49㎏급(K44)에 출전해 아프가니스탄 패럴림픽 사상 최초의 여성 국가대표로 기록됐다.
이렇게 여러 인생극복담이 모여 13일의 열전을 펼친 도쿄패럴림픽은 이날 오후 8시 국립경기장에서 폐회식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중국은 금메달 96개, 은메달 60개, 동메달 51개로 종합 우승을 확정했다.
한국은 금메달 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2개를 수확해 종합 순위 41위에 올랐다. 한국의 효자종목인 탁구에서 주영대(48) 김현욱(26) 남기원(55)이 남자 단식 금·은·동메달을 싹쓸이했고, 보치아 대표팀은 4일 패럴림픽 9회 연속 금메달에 성공해 독보적인 입지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당초 목표로 삼았던 ‘금메달 4개-종합 20위’엔 도달하지 못했다. 패럴림픽에 처음 출전한 1968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회 이후 53년 만에 가장 낮은 순위다. 다른 종합제전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인도(24위) 태국(25위) 요르단(36위) 말레이시아(39위)와 비교해도 후순위로 밀렸다. 2010년대 들어 하락세로 돌아선 한국 장애인 스포츠를 활성화하기 위한 과제가 도쿄패럴림픽에서 제시된 셈이다.
정진완 장애인체육회장은 도쿄 시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취재진을 만나 “한국 장애인 체육의 숙제가 많다. 도쿄패럴림픽을 통해 체계적인 스포츠 과학의 뒷받침 없이는 메달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음이 확인했다”며 “종목별 맞춤형 장비 지원, 체력 심리 기술 동작 분석 등 전담 과학 인력을 확보해 훈련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도쿄패럴림픽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