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구성을 앞둔 탈레반이 대원 모집에 박차를 가하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전직 아프가니스탄 군경, 이슬람국가(IS) 대원은 받지 않으며 수염을 기르지 않는 등 탈레반 관습에 어긋나는 이들도 가입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5일 ANI통신 등에 따르면 탈레반 동부 군사위원회는 전날 탈레반 가입 금지 대상을 공식 발표했다. 수염을 기르지 않는 등 탈레반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가입할 수 없고, 선글라스를 착용하거나 얼굴을 가리는 것도 금지된다.
과거 집권기 시절 탈레반은 여성에겐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게 하고 남성에겐 수염을 기르게 했다. 수염과 관련한 이슬람의 종교적 계율은 명확하지 않지만 이슬람교 예언자 무함마드가 생전에 턱수염을 기른 것을 모방해 신앙심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턱수염을 길게 기르는 관습이 있다. 탈레반이 재집권한 이후 아프간 남성 대다수는 다시 수염을 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아프간 군경은 물론 IS 대원도 가입을 금지시켰다. 소속 대원이 10만명이 채 안 되는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선 조직 규모를 확대해야 하지만 이슬람국가 호라산(IS-K) 등 다른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잠입 우려나 돌발적 테러도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다.
탈레반은 앞서 IS의 아프간지부 격인 IS-K가 지난달 26일 수도 카불 국제공항 외곽에서 1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자살폭탄 테러를 벌인 이후 미국이 드론 공습 작전으로 대응에 나서자 “미국의 공습은 아프간 영토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라며 IS-K는 자신들이 척결하겠으니 미국은 개입하지 말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은 9월 초 새 내각을 발표할 계획이라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아프간이 무법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탈레반이 순식간에 아프간 전역을 점령한 것은 맞지만 인력 부족으로 적절한 사법·보안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통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탈레반이 여성에게 장관직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후 카불, 헤라트 등 주요 도시에선 여성들이 정부 구성에 참여할 권리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탈레반은 최루탄과 후추 스프레이를 이용해 강제해산시키는 등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현지매체 톨로뉴스가 공개한 영상에선 확성기를 든 탈레반 대원이 대통령궁으로 행진하는 여성들을 막는 장면이 담겼다. CNN에 따르면 이날 시위에 참가한 한 아프간 여성은 “탈레반이 여성의 머리를 때렸고 여성들은 피투성이가 됐다”고 말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이날 아프간이 내전으로 분열돼 알카에다 등 테러단체가 재건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탈레반이 통치를 확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더 광범위한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는 알카에다, IS 등 수많은 테러단체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경고했다.
한편 탈레반 지도부는 인도, 파키스탄 등 인접국과 대화하며 공식 외교 행보에 나서고 있다. 파키스탄 정보국(ISI) 수장은 전날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카불에 방문해 안보·경제 등 아프간 재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카타르 주재 인도 대사도 지난달 31일 도하에서 탈레반 대외협상 최고 책임자와 만나 카불에 남은 인도인의 안전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