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도용당해 사업자로 등록되는 바람에 수억원의 과세처분이 내려진 것은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과세관청이 간단한 사실 확인만 했어도 실제 운영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A씨(40)가 대한민국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여주시를 상대로 제기한 납세의무부존재확인 등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3급 지적장애인인 A씨는 누나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다 2014년 실종됐고, 수년 뒤 발견됐다. A씨 누나는 동생의 실종기간 동안 B씨가 동생 명의로 주유소 사업자등록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B씨가 동생의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약 1600만원을 결제하고, 대부업체로부터 2500여만원의 대출을 받기도 했다는 것을 알고 B씨를 고소했다. B씨는 2018년 8월 준사기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B씨는 2014년 주유소를 운영하다 폐업신고를 했는데, 이때 1억2700만원의 부가가치세와 별도의 종합·지방소득세·등록면허세 등 일체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과세관청은 A씨에게 2014년 제2기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와 함께 주유소를 과세 물건으로 한 등록면허세와 지방소득세를 부과했다. A씨에게 부과된 세금은 가산금을 합쳐 약 4억원에 달했다. 이에 A씨는 과세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과세당국의 처분에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A씨가 사업자등록의 경제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과세관청이 처분 당시 간단한 사실확인만 했더라도 실제 경영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원고의 지적장애 정도에 비춰볼 때 사업자 등록의 법률·경제적 의미를 이해하고 주유소 사업자 명의를 대여했다고 볼 수 없다”며 “과세관청이 간단한 사실확인만 했더라도 주유소를 실제 경영한 사람이 A씨가 아님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