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저명한 경제학자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공동 부유’ 구상을 공개 비판하고 나섰다. 고소득층과 기업이 가진 파이를 나눠 중산층을 키우겠다는 시 주석의 전략이 자칫 공동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장웨이잉 베이징대 교수는 최근 ‘경제 50인 논단’(CE50)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시장의 힘에 대한 신뢰를 잃고 정부 개입에 너무 의존하면 공동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계획경제는 빈곤층에 더 많은 복지를 제공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많은 빈곤층이 생겼다”며 “중산층의 소득을 늘리는 최선의 길은 기업과 시장 경쟁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이 부를 창출할 유인이 없다면 정부가 빈곤층에 이전할 돈이 없을 것”이라며 “결국 상류가 말라버린 강처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CE50 홈페이지에 게재됐던 이 글은 현재 내려간 상태다.
장 교수는 미·중 무역 갈등이 한창이던 2018년쯤 열린 사회과학원 세계정치경제연구소 좌담회에서도 “최근 2~3년 사이 중국의 성장에 대한 나의 태도는 낙관에서 신중한 낙관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 개입이 점점 많아지고 새로운 가격 통제가 등장했으며 계획체제로의 회귀,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 부문이 커져 민간 기업 비중이 축소되는 현상) 등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일들이 역전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당시에도 “중국은 경제 구조를 전환하고 있다”며 “그러나 진정으로 해야할 일은 시장 개방이고 기업가 정신을 키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국무원 거시경제연구부 연구원을 지낸 웨이자닝도 지난 1일 개최된 한 화상회의에서 “반독점은 맞는 방향”이라면서도 “행정적 독점과 국유기업의 독점에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본과 재능있는 사람을 잘 대하고 혁신을 자극하는 일이 공동 부유를 위한 열쇠”라고 덧붙였다. 왕샤오루 중국개혁기금회 국민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발표한 글에서 “중국이 행정적 개입 방식에 의존해 개혁 전의 구체제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공동 부유는 내년 가을 열리는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지을 것으로 보이는 시 주석이 지난달 17일 공산당 핵심 지도부가 모두 참석한 중앙재경위원회 회의에서 언급한 구상이다. 시 주석은 “공동 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요구이자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라며 “질적 발전 속에서 공동 부유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공산당은 이날 회의에서 “고소득층에 대한 조절을 강화해 법에 따른 합법적 소득은 보장하면서도 너무 높은 소득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사회에 더욱 많은 보답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 부유를 실현하기 위해 고소득층과 기업이 가진 몫을 줄여야 한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후 중국에선 텐센트 등 주요 기업들이 공동 부유 관련 프로젝트에 큰 액수를 투입하기로 하는 등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