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딸 유서엔 “아빠는 무죄”…오창 여중생 사망 사건

입력 2021-09-05 08:07 수정 2021-09-05 10:08

SBS 시사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오창 여중생 사망 사건’의 진실을 파헤쳤다. 이날 방송에선 성폭행 피해를 호소했다가 진술을 번복한 숨진 의붓딸의 유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공개된 유서엔 자신의 아버지가 무죄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5월 12일 청주 오창읍의 한 아파트에서 두 명의 여중생이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을 다뤘다. 가족들과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던 이미소(가명)양은 친구 한아름(가명)과 함께 동네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로 향했고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비극은 지난 1월에 시작됐다. 미소양은 주말을 혼자 보내야 하는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이때 예상에 없던 아름양의 계부가 집으로 돌아왔고 그가 권하는 술을 마신 뒤 잠이 들었다. 미소양은 난생처음 접한 불쾌한 느낌에 눈을 떴다. 친구의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미소양 부모는 아름양의 계부인 하씨를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하씨는 의붓딸에게도 여러 차례 성적 학대를 한 정황이 포착됐다. 하지만 하씨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미소양과 아름양에게 술을 권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범죄는 억울하다는 것이다.

계부 하씨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의붓딸인 아름양의 유서를 제시했다. 제작진은 아름양이 남긴 유서를 공개했다. 유서엔 “존경하는 재판장님, 누군가 저의 아버지를 신고했다. 신고한 이유는 나를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저에게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고 아버지는 무죄다. 나를 아껴주는 딸 바보다.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도 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제작진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주변인들을 만났다. 아름양과 돈독했던 이복 큰언니는 아름양이 세상을 떠나기 전 전화통화에서 ‘난 이생에 미련이 없어’라는 말을 계속했다고 한다. 큰언니는 무슨 일이냐고 추궁했고 아름양은 성폭행 비슷한 것을 당했다고 했다. 큰언니는 자세히 얘기해 보라고 추궁했지만 “짜증난다”며 결국 울음을 터뜨려 더 묻지 못했다고 했다.

비보를 듣고 장례식장에 간 큰언니는 “아름이 친모에게 성폭행에 관해 물어봤다. ‘내가 아름이랑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통화했다. 아는 거 있냐’고 했다. 자기가 모르는 이야기면 ‘무슨 소리냐’고 물을 텐데 ‘누가 성폭행했다고 했냐’고 물어보더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큰언니는 “친모는 아름이가 우울증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거라고만 하고 성폭행은 모른다고 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아름양이 자신이 겪은 일을 모두 털어놓은 친구를 만났다. 아름양 친구 박준영(가명)군은 “술 먹은 다음에 아빠한테 당했다. 아빠가 눈 가리고 그랬다고 이야기를 해주더라. 그게 12월이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아름양이 스스로 찾아간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에서도 아름양은 같은 주장을 했다. 또한 아름양은 상담 시 “저는 꿈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그런데 꿈을 꾸면서 냄새가 나나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꿈인데도 파스 냄새가 너무 생생했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아이들은 믿고 싶지 않으면 꿈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름의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으로 진술을 취소할 때 많이 쓰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수정 교수는 “아름양이 처음에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피해를 당한 것 같다”며 “본인 친구 피해로 인해 고통을 바라보게 되면서 자기에게 일어났던 계부와의 성적 접촉이 뭔지 정확히 알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친모 천씨와 계부 하씨는 2017년 함께 충북 청주 오창으로 이사왔다. 이후 아름양은 계부와 단둘이 있었다. 미소양이 하씨를 고소한 이후에도 아름양은 분리되지 못하고 계부와 함께했다. 친모는 제작진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아름양의 이복 언니들은 동생이 철저히 방임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아름양의 친구 어머니도 “애가 늦게 22층까지 올라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친모에게 했다고 한다”며 “하지만 아름양의 친모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방조 정도가 아니라 애를 죽게 내버려 둔 거다. 성폭행은 1월에 생기고 2월에 고소가 들어갔다”면서 “애랑 아빠랑 같이 지내게 했다. 애가 어디 의지할 데가 없었던 거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아름양의 큰언니도 “엄마가 그러니까 의지할 데는 계부밖에 없는 거다.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아름이의 실질적 보호자는 자신과 친구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는 계부가 유일했다”고 말했다.

청주시청 아동보육과 관계자는 “친구가 연락하면 만남을 거부하고 아빠랑 사는 게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친모는 연락이 안 되고 거부했다. 문자 답변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생아나 장애아면 임의대로 분리조치를 할 수 있는데 현재는 인권을 가진 아동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분리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아름양의 친모 천씨는 아동학대 혐의로 지난 6월 15일 불구속 송치됐다. 성범죄자 재범 위험성 평가가 ‘높음’ 수준이 나와 출소해도 성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이 있다고 인정된 하씨는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하씨는 3개월 동안의 수사 중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3번 반려된 상황이어서 우려가 적지 않다. 피해자들의 진술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피해자들이 모두 사망해 하씨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면 무죄가 나올 수 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