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을 건너기 시작했을 때 자전거 바퀴는 이미 절반 정도 물에 잠겨 있었다. 건널목 가장자리에 도착했을 땐 폭우가 범람해 안장 높이까지 빗물이 차올랐다. 검은색 점퍼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쓴 운전자는 한 손으론 물건이 담긴 비닐봉지를 움켜쥔 채 위태롭게 자전거를 끌었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조니 밀러(40)는 지난 1일(현지시간) 오후 10시 2분쯤 뉴욕 브루클린의 한 교차로에서 이 장면을 목격했고, 동영상을 찍어 전 세계 빈곤과 불평등을 기록하는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허리케인 아이다가 뉴욕을 강타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밀러는 “폭풍우에 흠뻑 젖은 채로 중국 음식을 배달하기 위해 벤츠 앞을 지나치는 그를 보고 속이 뒤집혔다. 우리는 재난이 발생하면 일을 하지 않을 특권이 있는데, 일부는 그렇지 않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아이다, 불평등 문제 끄집어냈다
해당 운전자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상은 미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5일 현재 조회 수는 1200만 회를 넘어섰다.뉴욕타임스(NYT)는 “배달원이 누군가의 주문서를 움켜쥐고 허리 깊이의 물속을 걸어가는 동안 차에 있던 사람들은 소방관이 와서 구조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도시의 생생한 사례”라고 보도했다.
로스 딜리버리타스 유니도스 정책이사인 힐다린 코론은 “빌 드 블라지오 뉴욕시장은 ‘귀가하라’고 했다. 그러나 배달 앱은 ‘아니야, 밖으로 나가’라는 의미로 노동자에게 인센티브를 줬다”고 말했다.
실제 배달 플랫폼 업체 그루브허브 측은 그날 일부 라이더들에게 건당 2달러의 인센티브를 줬다. 레스토랑 음식 배달 전문업체 릴레이 측은 배달원이 할당된 주문의 최소 90%를 완료해야 요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
NYT는 “정규직 고용에 대한 법적 보호가 없고, 배송을 거부할 경우 낮은 평점을 받거나 앱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보도했다. 이어 “음식 배달업체는 수요가 높거나 날씨가 궂을 때 추가 금액을 제공해 배달원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린다”며 “여름은 배달 비수기여서 많은 근로자가 위험한 상황에서도 돈을 벌 기회에 뛰어든다”고 보도했다.
코론은 “사람들은 (배달원이) ‘왜 목숨을 거느냐’고 묻는다. 이건 그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라며 “2달러 인센티브는 생명줄과 같다”고 말했다.
폭풍우가 남기고 간 상흔에서도 미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망자들 흔적에서 구조화된 불평등이나 부조리 문제가 발견되고 있어서다.
NYT는 “뉴욕에서 사망한 대부분의 사람은 홍수가 아파트 지하로 쏟아져 들어왔을 때 익사했다. 대부분 안전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곳”이라며 “거주자들은 근로 빈곤층, 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민자들이어서 당국에 불만을 제기할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뉴욕 사망자 13명 중 11명은 지하실을 주거용으로 불법 개조한 곳에서 머물다 변을 당했다.
인재로 사망한 요양시설 거주자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요양원 운영자가 허리케인 아이다를 대비한다며 노인 800여 명을 비좁은 창고로 이송했다가 여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설 거주자들은 허리케인 피해가 지속하는 동안 비가 새는 창고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잤다. 창고는 오줌 등 배설물 쓰레기가 구석에 쌓일 정도로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됐다. 주 보건당국은 사망 원인 등에 대한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외신 등에 따르면 루이지애나주 탕기파호아 패리시 카운티의 한 창고에 머물고 있던 환자 6명이 최근 연이어 사망했다. 해당 창고에는 요양시설 일곱 곳에서 이송된 843명의 환자가 머물고 있었다. 아이다 상륙 전 거주자들을 창고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러나 해당 시설은 요양시설 거주자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경찰은 “창고는 300~3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환자들이 머무는 동안) 창고 발전기가 몇 차례 작동을 멈췄고, 화장실에도 문제가 있었다. 일부 거주자들은 바닥에 에어매트를 깔고 있었다”며 “허용될 수 없는 환경 조건이었다”고 밝혔다.
이를 언론에 제보한 직원도 “오줌과 배설물로 가득 찬 쓰레기가 구석에 쌓였다. 벽으로 빗물이 새 환자들은 다닥다닥 붙여놔야 했다. 공간이 부족해 직원들은 차에서 잠을 자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아무런 계획 없이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창고에서 일부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고 말했다.
비위생적 환경에 노출된 거주자들이 사망하기 시작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사망자는 3명에서 이날 6명까지 늘었다. 보건당국이 이들 환자를 구조할 당시 12명이 긴급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태여서 사망자가 더 늘어날 우려도 제기됐다. 루이지애나 보건당국은 이들 사망자를 모두 아이다 관련 사망자로 분류했다.
해당 시설은 모두 복지 관련 사업가인 밥 딘 소유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딘 소유의 요양원 중 6곳은 정부 요양시설 평가에서 최하점(5점 만점 중 1점)을 받았고, 나머지 한 곳도 저조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