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으로 돌아온 조성진 “그동안 의식적으로 피했지만…”

입력 2021-09-03 16:49 수정 2021-09-03 18:46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두 번째 쇼팽 앨범 발매와 리사이틀 투어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쇼팽 음반을 낸 뒤 의식적으로 쇼팽 곡을 녹음하지 않았어요. 대신 드뷔시·모차르트·슈베르트·리스트 등 다양한 작곡가의 곡을 녹음했습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자칫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각인될 수 있거든요.”

피아니스트 조성진(27)이 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번째 쇼팽 앨범 발매에 대해 “5년이면 두 번째 쇼팽 음반을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스케르초’ 발매를 기념해 오는 4~18일 7개 도시에서 전국 투어 리사이틀을 여는 것에 맞춰 마련됐다. 국내 무대는 지난해 11월 이후 약 1년 만이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모든 공연이 중단됐다가 재개한 것이 작년 한국 투어였다. 뜻깊은 연주였고, 개인적으로는 일상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면서 “여전히 코로나19 상황이 좋지 않지만, 올해 다시 한국에서 연주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우승을 거머쥔 조성진은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과 계약했다. 그리고 이듬해 데뷔 앨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발라드’를 발매했다. 쇼팽 레퍼토리는 두 번째인 이번 앨범 역시 첫 쇼팽 앨범과 마찬가지로 지아난드레아 노세다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췄다. 원래 지난해 녹음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3~4월에 나눠서 녹음했다. 다만 리사이틀에선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아닌 스케르초 전곡, 야나체크와 라벨의 곡을 선보인다.

조성진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두 곡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쇼팽 콩쿠르 당시 1번을 연주한 것은 아무래도 자주 연주해 친숙한 데다 2번보다 곡의 길이가 8~10분 긴 만큼 보여줄 수 있는 테크닉이나 음악적 요소가 많기 때문이었다”면서도 “협주곡 2번은 1번보다 더 섬세한 면이 많고 구조도 자유로운 매력이 있다. 특히 2번의 2악장은 쇼팽의 피아노 작품 중에서도 매우 아름다워서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스케르초 4곡은 각각 성격도 다르고 훌륭한 작품이다. 다만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2번이다. 지휘자 정명훈 선생님과 은사인 신수정 선생님을 각각 처음 만났을 때 연주한 곡이 바로 2번이었다. 쇼팽 콩쿠르 세미 파이널 마지막 곡으로 연주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조성진의 두 번째 쇼팽 앨범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스케르초'

쇼팽 콩쿠르 당시와 비교해 그의 쇼팽 연주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는 “콩쿠르라는 환경에서 연주했을 때는 경직된 느낌이 있다. 오히려 콩쿠르 이후 자유롭게 내 음악을 할 수 있었다”면서 “그동안 연주 스타일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매일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은 똑같아 보이지만 주변에선 사람들은 늙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스스로는 그 변화를 잘 모른다”고 설명했다.

5년마다 열리는 쇼팽 콩쿠르는 원래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지만 1년 연기돼 올해 열린다. 전 세계에서 지원한 500여 명 가운데 비디오 심사를 거쳐 선정된 151명이 참가한 예선이 지난 7월 열렸다. 그리고 10월 2~23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본선에서 96명이 겨룬다.

쇼팽 콩쿠르의 직전 대회 우승자인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가 많은 기회를 줬지만, 개인적으로 긴장되고 끔찍한 기억이었다. 연주자라면 대부분 콩쿠르에서 부담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아, 이제 콩쿠르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과 기쁨이 가장 컸다”면서 “콩쿠르는 기본적으로 운이 좀 필요하다. 참가자는 준비를 최대한 완벽히 하고 컨디션 조절을 하면서 마음을 비우는 게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이번 한국 투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앙코르 공연으로 네이버TV를 통해 실황 중계된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여러 차례 온라인 공연 무대에 나왔다. 다만 그의 국내 무대가 실황 중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두 번째 쇼팽 앨범 발매와 리사이틀 투어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쇼팽 스케르초 2번을 연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의 공연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온라인 콘서트를 했어요. 첫 온라인 콘서트 당시 여러 감정이 들었어요. 관객과 직접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슬프기도 하면서 이렇게나마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했고요. 코로나 덕분에 관객의 소중함을 정말 깨달았습니다. 온라인 콘서트는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협연이나 실내악에 참여하는 게 더 좋았는데, 누군가랑 같이하는 데서 얻는 에너지가 있어서라고 봅니다. 이번 국내 온라인 공연의 경우 관객이 있는 상황에서 콘서트를 바로 스트리밍하기기 때문에 연주자로서는 더 좋은 거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과 관련해 조성진은 2023년까지 연주 일정이 잡혀 있다. 내년에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등 메이저 악단과의 협연도 잡혀 있다. 그는 “다음 한국 공연은 독주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협연이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음반의 경우엔 헨델 등 바로크 음악가들의 작품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조성진은 지난 2019년 통영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와 피아노 협연을 겸하는 이색 무대를 펼친 바 있다. 최근 피아니스트 김선욱와 비올리스트 이승원 등 스타 연주자가 지휘자로 전향하는 케이스가 가끔 나오고 있어서인지 조성진 역시 지휘자에 대한 꿈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그는 “통영에서 실험적인 이벤트로 지휘를 했었는데, 그때 앞으로 지휘는 안 하겠다고 결심했다”면서 “나는 지휘엔 재능이 없다. 피아노 연주를 더 열심히 하겠다”고 웃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