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와의 전쟁’ 가속화되나…한은과 금융위의 ‘의기투합’

입력 2021-09-03 12:16 수정 2021-09-03 12:18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오른쪽)와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3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수장들이 가계 부채 폭증에 대한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금융 불균형 완화 필요성을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한은과 금융위의 공조로 정부의 ‘가계 대출 조이기’가 가속화될지 주목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3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고 위원장 취임 후 첫 회동을 가졌다. 고 위원장이 이 총재와 만난 건 취임한 지 사흘 만이다.

이 총재는 이날 회동에서 “최근 자산시장으로의 자금 쏠림, 가계 부채 증가 등 위험이 누적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금융 안정은 물론 성장·물가 등 거시 경제 안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 위원장은 “가계 부채 증가와 자산 가격 과열 등 금융 불균형 해소를 위한 선제적 관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양측은 이러한 가계 부채 관리를 포함한 코로나19 경제 위기 대응을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고 위원장은 “금융위와 한은이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한 정책 공조와 협업을 통해 정교히 대응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회동 전 기자들에게도 “앞으로 이 총재와 가능한 자주, 많이 만나겠다”며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만나 여러 이슈를 상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도 “5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만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통화하고 만나자고 했다”고 했다. 고 위원장은 지난 2016년 4월부터 금융위원장 내정 전까지 5년 4개월간 한은 금융통화위원으로 일했다.

한은과 금융위 수장이 가계 부채 리스크에 대한 의견을 같이하는 만큼 금리 인상과 더불어 대출 규제 등 긴축 정책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가계 부채 문제를 거론하면서 여러 차례 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매파’(통화 긴축 중시) 성향으로 분류되는 고 위원장은 지난 7월 금통위 당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제시했었다. 금융위원장 취임 전후로도 선제적인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은행권 대출 조이기는 최근 본격화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이날부터 신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에 적용되는 변동금리를 0.15%포인트 올렸다. 우리은행은 이달부터 주담대 상품의 우대 금리 한도를 0.3%포인트 줄였다. NH농협은행과 하나은행은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수준으로 낮춘 상태고, 다른 시중은행들도 이달 중 동일한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다. 농협은행은 11월 말까지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한은과 금융위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등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은 이어가기로 했다. 이 총재는 “취약 부문을 타겟으로 한 지원 정책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 한은도 대출 제도 등을 활용, 지원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회동을 시작으로 전자금융법 개정안으로 생긴 한은과 금융위의 갈등도 봉합될지 주목된다. 한은은 금융결제원 감독 권한이 있는 금융위가 빅테크 거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며 전금법 개정안을 반대해왔다. 고 위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전금법 개정안에 대해 “한은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을 만들겠다”고 한 바 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