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도 린스를 구매할 수 있게 해 달라’며 교도소 수용자가 행정 소송을 내자 법무부가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지침을 바꿨다.
대구지법 제1행정부(부장판사 차경환)는 대구교도소 수용자인 원고 A씨가 피고 대구교도소장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제명의결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다고 3일 밝혔다.
각하는 소송이나 청구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본안 심리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A씨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샴푸와 린스는 남녀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제작됐으므로 피고 대구교도소장이 린스를 여성용 자비구매 품목으로 지정하고 원고와 같은 남성 수용자에게는 이를 판매하지 않는 것은 평등 원칙에 위반되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소송을 냈다.
매년 1월 자비 구매 물품을 지정해 판매하고 있는 법무부는 올해 1월 11일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과 시행 규칙’ 등에 따라 ‘수용자 자비구매 물품 공급 계획’을 수립하며 린스를 여성용 품목으로 지정했다.
A씨가 제기한 행정 소송이 시작되자 법무부는 재판 중 자비구매 물품 공급 계획을 변경했다.
이에 대구교도소도 물품 지정을 변경하며 지난 7월 7일부터 린스는 남녀 공동 사용 물품으로 지정됐다.
재판부는 “원고의 주장처럼 모발 관리 용품인 린스를 여성 수용자에게만 판매하도록 지정한 행위는 그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어 헌법 상 평등 원칙에 위반된다고 보이지만 현재 이러한 위법 상태는 이미 해소됐고 이 사건 지정을 소급해 취소한다고 하더라도 그로써 회복할 수 있는 다른 권리나 이익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법무부 및 피고 대구교도소장이 린스를 남녀 공동사용 자비구매 물품으로 변경·지정한 것도 당초 린스를 여성용 물품으로 지정해 판매한 행위가 불합리한 차별에 해당한다는 반성적 고려에 기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앞으로 그와 같은 차별이 반복될 위험성이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며 “이 부분 소는 항고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행위의 취소를 구하는 것이고 더는 그 취소를 구할 소의 이익도 인정되지 않아 부적법하다”며 각하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대구=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