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소방차 막은 불법주차, 2년10개월 만에 첫 강제처분

입력 2021-09-02 18:24
긴급 상황이 벌어졌을 때 소방차 진입을 막는 불법 주정차 문제가 잇따라 발생하자 2018년 6월 차량을 강제 이동시킬 수 있는 조항이 시행됐다. 적극적인 강제조치의 첫 사례는 개정 2년 10개월 만인 지난 4월 이뤄졌다. 사진은 도로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이 늘어선 모습. 최현규 기자


2018년 6월 긴급한 소방 출동 시 불법 주정차 차량을 강제로 제거·이동할 수 있는 ‘강제처분’ 조항이 일부 개정·시행됐지만 국민일보 취재 결과 2년 10개월 만인 지난 4월에서야 전국에서 첫 사례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당국은 첫 사례가 나온 만큼 향후 다른 긴급출동 현장에서도 적극적인 강제처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4월 11일 오후 3시14분쯤 서울 성내동 한 골목 주택 지하 1층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타는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서울 강동소방서에 접수됐다. 강동소방서는 현장지휘 차량과 구급 차량, 화재진압용 덤프트럭 등을 현장으로 출동시켰다. 신고가 접수된 곳은 강동소방서에서 약 1㎞ 떨어진 곳이었다.

신고현장은 강동소방서에서 출동 후 5분 내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골목길 주정차금지구역에 불법 주차된 승용차 2대가 장애물이었다. 신고 현장을 불과 150m 앞두고 화재진압용 덤프트럭은 현장에 가까이 진입할 수 없었다. 소방대원들은 사이렌을 크게 울리며 불법주차 차량을 옮겨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근처 상가의 피부미용실을 이용 중이던 차주 1명이 나와 차량 1대를 옮겼지만 나머지 차량의 차주는 응답이 없었다. 촌각을 다투는 긴급출동 상황에서 화재진압용 덤프트럭이 차량 사이를 지나갈 수 없어 소방대원들은 애를 태울 뿐이었다.

육안으로 본 신고 현장은 검은 연기가 나고 있었다. 화재 위치도 지하 1층이어서 만약 불이 크게 번진다면 내부에 있던 사람이 출구를 쉽게 찾지 못할 확률이 컸다. 그 경우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질식할 위험이 있었다.

결국 현장 지휘관이었던 신모 진압대장은 “차량을 파손시켜서라도 골목길을 지나가자”는 판단을 내렸다. 신 대장의 지휘로 화재진압용 덤프트럭은 불법주차된 차량 옆면을 긁으며 겨우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조리대 화구에서 불이 나 생활 집기에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하고 안전하게 진압했다. 주택 내부에서 불이 났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잠을 자던 시민 1명도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다. 신 대장은 “화재가 발생하면 우리는 1초든 10초든 최대한 단축해서 출동해야 한다”며 “급박했던 상황이라 불법주차 차량을 밀어내서라도 현장에 빠르게 도착해야 했다”고 말했다. 차량 파손의 위험을 감수하고 긴급출동을 한 전국 첫 사례였다.

2017년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당시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현장 진입이 어려워 논란이 일었다. 이듬해 법이 개정돼 강제로 차량을 이동할 수 있도록 했지만 현장 적용은 지지부진했다. 서울 지역의 한 소방관은 “강제처분으로 차량이 파손되면 현장 소방관들이 소송이나 민원 등의 부담을 지게 된다는 인식이 아직 강하다”고 토로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불법 주정차 차량에 손상이 발생해도 손실보상을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법에 명시됐지만 실제로 면책을 받은 사례가 나오지 않아 현장 적용에 소극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첫 강제처분 사례가 나온 데는 전국 소방관들의 배상 책임보험 한도가 상향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전국 소방관들의 배상 책임보험 한도는 기존 연간 2억~10억원에서 연간 70억원으로 상향됐고, 1건당 한도도 기존 3000만~3억원에서 5억원으로 늘어났다. 소방관의 자기부담금도 아예 사라졌다. 이번에 강제처분을 받은 불법주차 차량은 소방청에서 직접 사후처리를 진행했다. 또 차주가 자신의 불법주차 과실을 인정하면서 현장 소방관들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신 대장은 “향후 다른 현장에서도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인명구조가 늦어지는 고충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