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노인이 품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봉투의 정체[아살세]

입력 2021-09-03 02:15 수정 2021-09-03 02:15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퇴임한 한 시민이 코로나19 방역 현장에서 고생하는 후배 공무원들을 위해 써달라며 전주시청에 성금 700만 원을 기탁했다. 전주시청 제공

지난달 31일 오전, 전주시청에 백발의 어르신 한 분이 방문하셨습니다. 조금은 버거워 보이는 발걸음으로 3층 시장 비서실을 찾아오신 어르신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봉투를 하나 꺼내 시청 직원에 건네셨는데요. 봉투 겉면에는 ‘코로(나) 예방 공무원 격려금’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봉투를 건네신 분은 올해 92세의 임양원 어르신이었습니다.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퇴임한 어르신께서 코로나19 방역 현장에서 고생하는 후배 공무원들을 위해 써달라며 700만원을 기부하셨는데요. 어르신께서는 “코로나19 방역과 보건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후배 공무원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며 후배들을 격려할 수 있는 작은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부금을 넣은 봉투를 품에 안고 전주시청을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퇴임한 한 시민이 코로나19 방역 현장에서 고생하는 후배 공무원들을 위해 써달라며 전주시청에 성금 700만 원을 기탁했다. 전주시청 제공

전주시 효자동에 사는 어르신은 지난 4월 코로나 백신 접종을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다고 합니다. 현장의 공무원들은 주사를 맞고 나서는 어르신이 수송 버스에 오르시는 것을 도왔습니다. 이 수송 버스는 각 동 주민센터와 화산예방접종센터(화산체육관)를 오가며 거동이 힘든 75세 이상 어르신들의 백신 접종을 돕고 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예방접종을 위해 동 주민센터에서 한 손 한 손 잡고 조심스럽게 버스를 태워주고, 본인이 타고 온 버스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명패를 착용해주고, 접종 전후에 수시로 전화해 상태를 묻는 배려가, 나 자신도 퇴직 공무원이지만 그동안 겪어본 것 중 최고의 행정서비스였다”며 “이렇게 시민을 위해 고생하는 공무원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네요”라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전주시는 값진 기부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어르신의 뜻에 따라 기부금은 코로나19 방역 현장 공무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는데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와 같은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전주시청 SNS에 “임양원 어르신처럼 존경받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르신이 전주 분이라 자랑스럽고 본받아 나눔 실천하겠다”라는 댓글을 남기며 감동을 전했습니다. 또 “요새 공무원들 진짜 고생 많을 것 같다”, “공무원분들을 비롯한 코로나19 관련 종사자들, 자원봉사자들, 의료인들 모두 힘내시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격려금을 품에 꼭 안은 채 시청을 찾아오신 어르신. 시청까지 오시는 한 걸음 한 걸음에는 고생하는 공무원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방역과 보건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어르신의 따뜻한 격려가 꼭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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