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용성 있는 도시숲…행정의 정책적 용기·상상력 관건

입력 2021-09-02 11:55 수정 2021-09-28 16:11

시기마다 변하는 산림(山林)
산림(山林)은 시대적 여건과 정부의 정책에 따라 변한다. 제주의 숲도 마찬가지다.

13세기 몽골이 일본 정벌에 나설 당시 제주도는 전쟁 물자를 조달하는 병참기지의 역할을 해야 했다. 당시 300척의 선박이 제주에서 만들어지면서 울창한 숲이 베어져 나갔다. 20세기 일제 강점기에는 8만에 가까운 일본군이 제주에 머물며 해안가에서 한라산 고지대까지 군사 시설을 구축하며 산림을 파괴했다. 그로 인해 제주의 오름은 하나같이 민둥산이었다.

때문에 광복 이후 제주도의 조림 정책은 일제 강점기 황폐화된 산림을 회복하는 데 초점 맞춰졌다. 국유지를 중심으로 생장이 빠른 나무를 집중 식재했다. 우리나라 전체적으로도 온 국민이 묘목을 길러서 나무를 심어 가꾸는 범국민조림운동이 실시됐다. 정부가 식목일을 지정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한라산 국유림 지역에 수종갱신사업으로 삼나무 조림이 추진됐다. 1970년대 이후에는 주로 삼나무와 편백·해송을 심었다. 이때 식재된 나무들이 지금 아름드리 나무로 성장해 오늘날 제주의 대표적인 산림휴양처로 사랑 받고 있다. 도로 확장 사업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비자림로 삼나무숲을 비롯해 제주시 절물자연휴양림, 사라봉, 별도봉 등이 대표적이다.

나무 심기에만 매달리던 조림 정책은 1990년 이후 산지자원화 정책으로 방향을 옮겨간다. 산업사회의 발달과 도시화의 진전으로 농촌, 산촌이 인력 부족을 겪으면서 산림 정책에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틀이 요구됐다. 정부는 나무를 심고 가꾸던 기존 치산녹화정책을 산림자원화정책으로 전환했다. 제주에서도 지역 풍토에 맞는 향토수종 조림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경제수종 위주의 나무 심기는 환경림과 경관림 조림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조금씩 바뀌어갔다.

2000년 이후에는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을 목표로 두면서 산림의 총체적인 잠재력을 최대화해 궁극적으로는 산림을 통해 시민 복지를 향상하는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숲을 경제적으로 활용하면서 생물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시민들의 산림휴양을 장려하는 등 산림을 다채롭게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온실가스 흡수, 열섬 현상 완화 등 산림생태계의 환경적 가치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제주도 등 전국 자치단체가 최근 관심 있게 추진하는 도시숲, 학교숲, 벽면 녹화, 교통섬 그늘목, 수벽 조성 등의 정책이 모두 이 같은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의 일환이다.

이처럼 제주의 숲과 제주도의 산림정책은 시대 여건과 정부의 정책 지향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띠어왔다.

살기 좋은 동네엔 잘 가꿔진 숲이 있다
제주는 지질학적 가치와 아름다움으로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을 달성한 ‘환경보물섬’이다. 사면이 바다이고 중앙에 우뚝 솟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368개의 오름이 도 전역에 자리하고 있다. 차를 타고 한 시간만 가면 곳곳에서 천혜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일상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녹지공간은 충분치 않다.

지난해 제주도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14.27㎡로 4평이 조금 넘는다. 전국 평균(11.51㎡)보다는 높지만 전남(22.05㎡) 세종(21.18㎡) 강원(21.03㎡) 등에 비하면 낮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을 제외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에서는 하위 그룹에 속한다. 이마저도 지역 편차가 커 구도심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숲을 향유하는 기회는 더 적어진다.
상공에서 바라본 제주시 구도심 일대. 제주항 오른 편으로 사라봉 일대를 제외하고는 녹지 공간을 찾아보기 어렵다. 독자 제공

제주시 내 도시공원 총 194곳 중 22곳이 구도심(일도동, 이도1동, 삼도동, 건입동, 용담동)에 있다. 반면 신도심으로 분류되는 지역(연동 노형동 아라동 이도2동)에는 구도심보다 3배 이상 많은 72곳이 이미 조성됐거나 조성 중에 있다. 일도1동과 이도1동에는 도시공원이 한 곳도 없다.

도시공원의 범주에는 신산공원과 같은 근린공원과 용담레포츠공원과 같은 체육공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어린이공원이 포함된다. 도시공원의 지역별 편차가 크다는 것은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시민들이 녹색 공간에서 얻는 행복의 크기가 사는 곳에 따라 다르게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재생사업에서 도시의 쾌적성을 포함한 정주 여건 개선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적인 요소다. 구도심 지역의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서도 해당 지역의 녹지 공간 확보는 행정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가 상승으로 숲을 조성하기 위해 대규모 공간을 찾는 일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때문에 연차적인 예산 확보를 통해 장기미집행 공원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기존 녹지 공간을 시민들이 이용하기에 더욱 적합하게 가꾸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물길만 나 있는 산지천 주변에 교목을 보강해 시민들이 오래 머물게 하는 등 제주시 도심을 관통하는 하천을 활용한 도심녹지생태축 확대 방안도 적극 고려해 볼만하다.
제주시 동문로 인근 산지천의 모습. 물길은 복원했지만 주변부에 가로수가 적어 일대 유인 효과는 낮은 편이다. 문정임 기자

행정의 용기와 상상력이 관건
제주도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100만 그루를 심는 ‘숲 속의 제주 만들기, 500만 그루 나무 심기 사업’과 도시 외곽 산림에서 생성되는 차고 신선한 공기를 도심으로 흐르게 해 도심부의 공기 순환을 촉진하는 ‘도시바람길숲 조성사업’을 핵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학교 명상숲 조성, 안심 숲길 통학로 설치, 무장애숲길 조성, 마을 정원 만들기 등 지역 내 여러 계층에 산림 효과를 공유하는 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생태 및 조경 전문가들은 공간의 기능 강화를 주문한다. 분수대 등 시설 위주의 조경은 한 번 고장이 나면 예산이 확보될 때까지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인공 시설을 최소화하면서 이용자 동선에 맞는 수종 식재로 공원에 대한 시민 만족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서울시는 2019년부터 횡단보도나 교통섬에 인공 그늘막 대신 그늘목(木)을 설치하고 있다. 그늘막 설치·교체·수선 비용을 줄이면서 미세먼지 흡수, 차량 배기가스 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까지 총 174개소가 조성됐다.
서울 올림픽대교 북단의 한 횡단보도에 조성된 그늘목. 서울시는 2019년 이후 174곳에 그늘목을 식재했다. 서울시 제공

어린이공원의 경우 가장 자리가 아닌 직접 놀이 공간에 나무를 심어 아이들이 그늘 아래서 안정적으로 놀 수 있게 해야 한다. 영국이나 일본 등 놀이를 적극 장려하는 국가에서는 고목을 중심으로 놀이기구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놀이 공간을 설계한다.

폭이 넓은 인도에는 가로수를 복수 열로 식재함으로써 도시의 경관을 새롭게 하고 소음 차단, 폭염 완화 등의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나무는 증산과정을 통해 주변의 열을 흡수하는데 가로수를 2열로 식재하면 주변 온도를 더 효과적으로 낮춘다.

최근 서울연구원이 서울시에 열환경 관리 전략을 제시하기 위해 진행한 조사에서는 나무 한 그루 당 온도 저감 효과가 양버즘나무 2.57℃, 은행나무 2℃, 느티나무 1.84℃, 소나무 1.35℃로 나타났다.

도심녹화사업은 도시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실용성과 효용성이 중요한 만큼 정책을 고안하고 추진하는 관련 부서의 정책적 의지와 상상력이 중요하다.

같은 ‘100만 그루 나무 심기’의 목표를 세웠더라도 작은 묘목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것과 녹지 공간이 적은 동네에 소규모 숲을 조성하는 것 혹은 도심지에 가로수 거리를 조성하는 것은 정책적 효과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도시숲 조성은 시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면서 저탄소 녹색 성장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다. 특히 제주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걷다 지친 관광객들을 위한 나무 그늘과 의자가 도심 곳곳에 필요하다. 거대한 가로수가 만들어내는 그늘은 도시를 품격 있어 보이게도 한다.

숲은 개인의 행복과 여가, 생태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지금 제주를 포함한 전 지구적인 어젠다가 되고 있다. 어떤 형태의 도시숲을 제주 도심에 구현할 것인가. 행정의 정책적 용기가 필요한 시간이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