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치’ 동양 세계 위에 입힌 마블의 새로운 가족이야기

입력 2021-09-01 19:53
영화 '샹치와 텐링즈의 전설' 스틸.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마블 영화에서 히어로들의 가족 이야기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비극적인 가족사와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와의 관계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중심에 녹아있다. ‘캡틴 아메리카’ 스티븐 로저스가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연인 페기 카터를 향한 사랑은 결국 결혼을 통해 ‘그들은 늙어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마무리된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이야기와 작별한 이후인 MCU 페이스 4에서도 마블 영화의 가족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다만 새 세대에게 맞는 확장된 가족 이야기가 담겼다.

영화 '블랙 위도우' 스틸.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올해 극장에서 MCU 페이즈4 영화의 첫 문을 연 ‘블랙 위도우’는 앞선 영화에서 조연으로 나왔던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렛 조핸슨)의 삶으로 대안 가족을 이야기하는 데 중점을 뒀다. 나타샤는 부모 없이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암살자로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커왔다. 임무 때문에 유년기 스파이들과 가짜 가족을 만들었던 게 유일한 가족으로서의 경험이다. 나타샤는 어벤저스가 된 후 그 가짜 가족들과 함께 자신처럼 세뇌당한 여성 암살자 위도우들을 구출하게 된다. 그 과정으로 나타샤는 부정해왔던 가짜 가족을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나타샤는 어벤저스 또 다른 가족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1일 개봉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동양의 전통적인 가족주의와 신세대의 가족상을 영리하게 대비한다. 아버지이자 어둠의 집단 ‘텐 링즈’의 수장인 웬우(양조위)는 가부장제를 대표한다.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는 무기 ‘텐 링즈’로 권력을 쌓아 올린 그는 아들 샹치(시무 류)가 가업을 이어받기를 바란다. 정작 딸 샤링(장멍)은 그 권력을 바라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된다. 웬우는 때로는 자식을 사랑하는 인자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마음에 어긋날 때는 엄격한 아버지로 변한다.


웬우의 시각에서 ‘샹치와 텐링즈의 전설’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기 위한 사투다. 자신에게 복수하러 온 적들에게 사랑하는 아내가 가족이 무너졌다고 여기고 복수에 눈이 멀어버린다. 행복한 가족을 위해 텐 링즈와 함께 권력을 포기했었던 웬우는 바로 그 이유로 아내가 죽었다며 텐 링즈를 되찾는다. 그리고 그 복수를 위해 온 가족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요한다.

남매는 이런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거부한다. 샹치는 어머니가 죽은 시점부터 암살자로서 훈련을 받지만 이내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는 선택을 한다. 미국에 간 샹치는 절친인 케이티(아콰피나)와 함께 칼 대신 호텔 대리 주차를 하면서 살아가는 삶에 행복해한다. 샤링은 마카오에 불법 격투장을 운영하며 자신만의 집단을 만드는 선택을 한다. 그들에게 아버지 웬우는 아내의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식을 버린 사람이었다.

영화 스틸.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는 화려한 액션들 사이에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부모와 자식의 갈등을 화해하려는데 주력한다. 샹치가 어머니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그가 그동안 단절하려고만 해왔던 자신의 뿌리를 긍정하게 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됐던 샤링이 ‘텐 링즈’의 수장이 되는 모습 역시 신세대의 전복으로 비친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샹치와 절친이자 동반자인 케이티와의 관계다. 그들의 연대와 동료애를 더 부각하는 모습은 기존의 히어로들의 관점을 중심으로 이성과의 사랑을 보여주던 방식과는 결을 달리한다. 샹치를 슈퍼히어로로 내세웠지만 평범한 케이티가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감은 새롭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