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콘서트홀이 지난달 13~22일 개최한 ‘클래식 레볼루션’의 음악감독 크리스토프 포펜이 자가격리를 면제받고 입국한 것을 시작으로 외국인 예술가의 내한공연이 늘고 있다. 2주간의 자가격리를 면제받게 된 예술가들이 한국행을 확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피아니스트 개릭 올슨은 지난달 26일부터 1일까지 KBS교향악단의 협연자로 3개 도시에 함께했다. 또 지난 5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자인 프랑스 출신 조나탕 푸르넬과 3위인 일본 출신 무카와 게이고가 오는 8~16일 국내에서 7차례 무대에 오른다. 이 밖에 9월에만 러시아 피아니스트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이스라엘 지휘자 요엘 레비가 자가격리 없이 내한한다. 10월 이후는 입국 관련 비자 및 자가격리 면제 신청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현재 추세라면 거장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와 루돌프 부흐빈더의 10월 내한공연도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해외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 가운데 중요 사업상 목적, 학술·공익 목적, 장례식 참석 등 인도적 목적, 공무 국외 출장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한 경우 격리 면제를 허용했다. 하지만 7월 공연계에서 자가격리 면제를 받은 외국 예술가는 거의 없었다. 당시 공연계에서 관계 당국에 외국 예술가의 자가격리 면제 기준에 대해 문의했을 때 사업의 중요성·긴급성·불가피성 및 역학적 위험성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코로나19의 4차 유행이 잠잠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 예술가의 자가격리 면제는 국민 정서상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당시 예외적으로 뮤지컬 ‘비틀쥬스’의 한국 프로덕션 연출가 맷 디카를로가 미국 본사를 다녀오며 자가격리 면제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다만 디카를로의 경우 한국에 처음 올 때 자가격리를 한 데다 한국 체류 중 무대세트 문제로 개막이 연기돼 미국 본사를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긴급성을 인정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클래식 분야에서는 프랑스 거주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가족 방문이 아니지만, 자가격리를 면제받은 것이 알려졌다. 해외 거주 한국인 예술가의 경우 현지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하면 가족 방문을 이유로 한국 방문 시 자가격리 면제를 받을 수 있다. 올여름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대거 국내 무대에 섰던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반면 외국인 예술가의 경우 백신 접종을 완료했더라도 원칙적으로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이에 대해 다른 분야와 비교해 예술에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예술도 다른 산업처럼 필수 분야로 보고 예술가의 입국 시 자가격리가 면제되는 패스트트랙을 일찌감치 적용해 줬다. 그리고 올 들어 백신 접종에 전력을 기울인 유럽 국가들은 접종 완료자에 대해 자가격리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제 예술 분야에서 자가격리 면제를 해 주고 있지만, 클래식계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불만이 많다. 일회성 연주를 위해 입국하는 외국인 예술가들이 자가격리 면제를 받은 데 비해 장기 체류하는 국내 오케스트라의 외국인 음악감독이나 상임 지휘자는 오히려 면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실례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오스모 벤스케,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마시모 자네티,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제임스 저드는 자가격리 면제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 음악감독들이 상반기엔 자가격리를 감수하고도 입국했지만, 하반기엔 입국을 포기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상반기엔 해외 공연장이 문을 닫은 상태여서 이들은 자가격리를 감수하고 한국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백신 접종으로 해외 공연장과 오케스트라가 본격적으로 공연을 재개한 요즘은 자가격리를 감수하고 한국에 올 시간적 여력이 없는 것이다.
개인 연주자의 경우 자가격리를 면제받기 시작했지만 단체는 여전히 면제가 어렵거나 불확실한 상황이다. 지난달 27일 인천과 오는 2~3일 서울에서 공연하는 ‘디즈니 인 콘서트’의 경우 미국 가수 4명과 프로듀서 1명 가운데, 가수 1명만 자가격리 면제를 받았고 나머지는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 기획사인 크레디아 관계자는 “지난 7월 관계당국 등에 문의하니 단체의 자가격리 면제는 받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었다. 원래 계약서에 2주간 자가격리를 감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었기 때문에 한국에 앞서 미국 내에서 공연 스케줄이 있던 가수 1명에 대해서만 자가격리를 면제받았다”고 말했다.
당초 국내 클래식 기획사들은 올 하반기에는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될 것으로 보고 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을 유치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상당수를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아직 취소하지 않은 단체들인 11월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와 러시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12월 영국 BBC 심포니 등은 자가격리를 면제받으면 내한하겠다는 입장이다. 빈필의 경우 11월 전세비행기를 이용해 일본 한국 중국 3개국 투어를 계획했는데, 현재 자가격리가 면제된 일본만 공연이 확정됐다. 3주 격리하는 중국은 최근 공연 취소가 확정됐고, 2주 격리하는 한국은 아직 미정이다.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경우 한국에서 스푸트니크V 등 러시아 백신이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여서 현재로선 백신 허가 여부에 달려 있다.
유럽의 경우 지난 5월 빈필이 이탈리아의 3개 도시 투어를 시작으로 8월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등 외국 예술단체의 투어가 재개됐다. 루체른 페스티벌의 경우 빈필 외에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등 외국 오케스트라들이 여럿 참여했다. 예술단체의 투어와 관련해 한국 현대무용 단체인 안은미컴퍼니도 9월 17일~10월 30일 벨기에,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 스페인에서 투어 공연을 가진다. 안은미컴퍼니의 경우 단원들이 모두 백신 접종을 완료한 만큼 이들 유럽 국가 입국시 자가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국내 클래식계 관계자는 “해외 오케스트라가 자가격리를 면제받게 되는 게 국내 공연계에서 투어가 본격적으로 재개되는 신호탄이 될 것 같다”면서 “올해 안에 한 팀이라도 면제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