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구출 통역사도 아프간 탈출 실패…“나를 잊지 마세요”

입력 2021-09-01 06:27 수정 2021-09-01 08:26

2008년 2월 21일 미국 상원의원 3명을 태운 헬리콥터가 아프가니스탄 산악지역에서 눈 폭풍을 만나 불시착했다. 헬리콥터는 바그람 기지 남동쪽 32㎞ 떨어진 산악지역 계곡으로 비상착륙했다. 그곳은 바로 전날 미군과 대규모 교전이 벌어져 탈레반 반군 24명이 죽은 전장에서 불과 16㎞ 떨어진 지점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존 케리, 척 헤이글 당시 상원의원과 함께 이 헬기에 타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분쟁지역 시찰 과정에서 이 사고를 당했다.

전직 군인 출신으로 구성된 사설 보안팀이 인근 탈레반 전사들을 감시하며 바그람 기지에 긴급 구조요청을 보냈다. 82공수사단 신속대응팀과 미국 사설 용병 ‘블랙워터’가 급파돼 수색에 나섰다.

현지인 베테랑 통역사 모하메드도 구조팀에 합류해 전술차량 험비에 올라탔다. 이들은 눈보라를 뚫고 조난자들을 찾았는데, 헬기는 당장 작동이 어려운 상태였다.

모하메드는 아프간 군인들과 함께 헬리콥터 인근에서 경비를 섰다고 한다. 그와 함께 일했던 용병은 “모하메드가 영하의 기온에서 30시간 가까이 상원의원들을 보호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그 모하메드가 전날 바이든 대통령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대통령님 나를 잊지 마세요. 저와 가족을 구해주세요.”

모하메드는 오랫동안 미군을 도왔다. WSJ은 “험난한 지역에 들어갈 땐 미군이 그에게 무기를 주기도 했다. 워낙 그를 신뢰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런 경력 때문에 그는 특별이민비자(SIV) 신청 대상이었다. 앤드류 틸 중령은 지난 6월 “그의 사심 없는 헌신은 미국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라는 편지도 써줬다.

그러나 그가 근무했던 방위산업체 계약자가 일부 서류를 분실해 비자 발급이 중단됐다. 모하메드는 지난 15일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뒤 무작정 공항을 찾았다. 하지만 미군은 모하메드의 출입만 허용했고, 아내와 4명의 자녀는 막았다고 한다.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전우들이 미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의 전우인 숀 오브리언은 “아프간 조력자 중 한 명만 도울 수 있다면 모하메드를 선택하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탈출에 실패했다. 미군이 전날 카불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띄웠을 때 은신처에 숨어있던 모하메드는 WSJ에 연락해 “집을 떠날 수 없다.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WSJ는 “13년 전 바이든 대통령의 구출을 도왔던 아프간 통역사 모하메드가 이제 자신을 구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백악관은 WSJ 보도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을 갖고 이번 철군 작전에 대해 “대단한 성공”이라고 치하했다. 철군 기한을 8월 31일을 지정한 것에 대해서는 “미국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며 “임의로 정한 데드라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과 관련한 결정에 대해 “떠나느냐 아니면 병력을 더 투입하느냐 결정만 남아 있었다”며 “나는 ‘영원한 전쟁’을 연장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실수로부터 한다. 도달할 수 없는 것 대신 성취 가능한 목표를 임무로 설정하고, 미국의 핵심 국가안보 이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결정은 아프간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의 재건을 위한 중대 군사작전을 벌이는 시대의 종료를 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을 계속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가 변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와 여러 전선의 도전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이버 공격과 핵확산에 맞서고 있다”며 “이런 새로운 도전에 대응해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군의 정당성을 언급하며 비판 여론에 정면 대응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남은 미국인들의 대피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테러를 감행한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에 대해 “끝난 게 아니다”라며 보복이 계속될 것임을 강조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