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전범 피해자’ 헌법소원 각하… 4명은 위헌 의견

입력 2021-08-31 18:23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 동원돼 일본군으로 복무하다 전쟁 범죄자로 처벌받은 피해자와 유족들이 정부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약 7년 만이다.

헌법재판소는 31일 고(故) 이학래 동진회 회장 등 B·C급 전범 피해자와 유족 등이 정부가 한일 청구권 협정 3조에 따른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5(각하) 대 4(위헌)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한일 청구권 협정 3조는 협정 해석 등과 관련한 양국 간 분쟁은 외교 경로를 통해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우선 전범 피해자들이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에 따른 처벌로 인해 입은 피해와 관련해 “이 사건 협정과 무관하다”며 “정부가 분쟁해결 절차에 나아갈 구체적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일 청구권 협정은 한일 양국의 재산 및 청구권 등에 관한 문제해결을 논의하게 되는데, 이들에 대한 처벌이 전범재판소 판단에 따라 이뤄진 만큼 협정의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강제동원 부분은 양국 간의 분쟁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950년대 일본이 한국인 B·C급 전범들에게 위로금 등을 지원한 적이 있는 점, 한국 정부가 외교적 경로를 통해 입법 등을 통한 해결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온 점 등을 근거로 “양국 간 분쟁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지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했다.

반면 이석태·이은애·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일제의 강제 동원으로 인한 피해 부분에 대해 정부가 해결 노력을 하지 않아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위헌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B·C급 전범들이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 동원으로 입은 피해는 예를 발견할 수 없는 특수한 피해”라며 “입은 피해에 대한 청구권 실현을 가로막는 것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의 침해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분쟁해결 절차에 나아가지 못한 부작위는 중대한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재 결정 이후 전범 피해자 측은 “각하 결정이 다소 아쉽지만 네 분의 재판관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부분에 희망을 갖는다”며 “이 싹을 키워나갈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이들은 피해자들을 위한 법안 마련 요구 등 관련 활동을 지속해 나갈 방침이다.

이 회장 등은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된 뒤 태평양 전쟁 연합군 포로 수용소에서 감시 업무 등을 하다 전쟁 후 전범 재판을 거쳐 처벌을 받았다. 이후 이들은 동진회를 결성해 1991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했으나 일본 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한국 정부는 2006년 B·C급 전범 피해자들을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했다. 이 회장 등은 2014년 정부가 한일 청구권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을 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